지난 13일 오전 현대차(005380) 울산공장에서 열린 기공식에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대차가 인공지능(AI)를 이용해 정 선대회장의 생전 목소리를 복원해 들려준 것이다. 정 선대회장은 “우리에게는 세계 제일의 무기가 있는데 그 무기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능공’들”이라며 “훌륭하고 우수한 이들의 능력과 헌신에 힘입어 머지않아 한국의 자동차, 우리의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날이 온다고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공식에서 무대에 오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할아버지인 정주영 선대회장의 생생하게 복원된 목소리가 담긴 영상을 보며 뭉클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회장은 “선대회장님이 생각하셨던 그 정신, 그리고 ‘하면 된다’는 생각, 또 근면한 생각들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같이 노력할 각오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가 정 선대회장의 메시지를 되새긴 것은 현대차가 울산공장 내 주행 시험장 부지에 2조 원을 투입해 새 전기차 공장을 짓기 시작해서다.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은 현대차그룹이 국내에 짓는 전기차 전용 공장 중 가장 큰 규모다.
정의선 “울산, 전동화 주도하는 혁신 모빌리티 도시"
현대차는 지난 13일 울산공장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두겸 울산시장,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전기차(EV) 전용 공장’ 기공식을 개최했다. 1968년 ‘세계시장에 대한민국 자동차를 선보이겠다’는 정주영 선대회장의 원대한 꿈으로 출발한 울산공장에서 ‘1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정 회장은 기공식에서 “울산 EV 전용 공장은 앞으로 50년 전동화 시대를 향한 또 다른 시작”이라며 “이 자리에서 100년 기업에 대한 꿈을 나누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과거 최고의 차를 만들겠다는 꿈이 오늘날 울산을 자동차 공업 도시로 만들었다”며 “현대차는 EV 전용 공장을 시작으로 울산이 전동화 시대를 주도하는 혁신 모빌리티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1968년 조립 공장으로 출발한 울산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공장이다. 반세기 동안 현대차 완성차 생산의 중심이자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발전의 산실로 발돋움했다. 울산 EV 전용 공장은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9년 만에 들어서는 현대차의 국내 신공장이기도 하다. 과거 종합 주행 시험장으로 활용되던 54만 8000㎡(약 16만 6000평) 부지에 연간 20만 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진다.
신공장 건설에 약 2조 원이 신규 투자되며 올해 4분기부터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6년 1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가며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초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모델이 이곳에서 처음 생산될 예정이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울산공장은 생산 라인의 기술자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들고, 도전하면서 발전해 왔다”며 “울산공장의 헤리티지를 이어받아 현대차는 사람을 위한 혁신 모빌리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보틱스·스마트 물류…'사람' 중심 미래형 공장 구현
울산 전기차 신공장은 혁신적인 제조 설비를 갖춰 임직원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한 근무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동화 시대에도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의 인본주의 정신을 계승해 사람 중심의 공장을 구현한다는 목표다.
현대차는 전기차 신공장에 싱가포르글로벌혁신센터(HMGICS)에서 실증하고 개발한 제조 혁신 플랫폼을 적용한다. 인공지능(AI) 기반 지능형 제어 시스템, 탄소 중립 및 RE100(재생에너지 사용 100%) 달성을 위한 친환경 저탄소 공법, 인간 친화적 설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신 제조 플랫폼을 기반으로 현대차는 전기차 신공장에 부품 물류 자동화 등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산 차종 다양화와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 시스템을 도입한다. 제품 생산성과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조립 설비도 자동화할 방침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장을 조성하기 위해 로보틱스와 AI 등 혁신 기술도 대거 적용에 반영할 계획이다.
울산의 자연을 공장 안으로 들여온 센트럴파크는 휴식 공간이자 각 동을 연결하는 허브로 조성한다. 파사드(건물의 출입구로 이용되는 정면 외벽)에는 태양광발전 패널과 업사이클링 콘크리트 패널을 사용해 탄소 배출을 최소로 줄이도록 했다.
현대차는 정 선대회장의 인본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동시에 56년 동안 쌓아온 브랜드 헤리티지를 융합해 전동화 시대에도 인류를 위한 혁신을 지속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사람을 위한 모빌리티는 고객뿐만 아니라 작업자를 위한 공장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재산은 사람이고 현대차도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광명·울산 잇는 삼각벨트 구축…2030년 톱3 진입 기반 마련
울산 EV 전용 공장이 착공에 들어가면서 기아(000270) 광명·화성공장과 현대차 울산공장으로 이어지는 국내 전기차 생산의 삼각벨트가 구축됐다. 2030년 전기차 글로벌 판매 톱3 진입을 노리는 현대차그룹의 계획도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상반기에 착공에 들어간 기아 오토랜드 화성의 맞춤형 전기 목적기반차량(PBV) 전용 공장과 기아 오토랜드 전기차 공장에 이어 마지막 퍼즐이 완성된 것이다. 광명에서 화성·울산으로 이어지는 전기차 생산의 삼각 벨트가 구축되면서 2030년 36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세계 3위권에 진입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계획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의 2030년 국내 전기차 생산 목표치는 151만대다. 이 가운데 60%인 92만대를 해외로 수출해 글로벌 생산량을 364만대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2030년 전체 전기차의 41.4%를 국내에서 만들겠다는 포부다.
시작은 순조롭다. 현대차그룹은 2024년 하반기부터 기아 광명 전기차 공장을 시작으로 기아 화성공장과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이 순차적으로 완공되면 국내에서만 50만 대 이상의 전기차 양산 체제를 갖추게 된다. 2025년 말 완공되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연산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신공장(HMGMA)까지 더하면 한국과 미국에서만 연간 최소 80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다. 향후 전기차 수요 확대에 맞춰 생산량을 늘려갈 경우 당초 계획을 달성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성장 둔화에 경쟁사는 투자 축소…현대차 “계획한 대로”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기차 판매 성장 둔화에도 계획한 전기차 관련 투자를 그대로 이어갈 방침이다. 정 회장은 기공식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비용 절감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운영의 묘를 살려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미국 포드·제너럴모터스(GM) 등이 투자 계획을 축소하거나 연기하는 것과 달리 계획한 투자를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에서 HMGMA 공장 외에도 SK온·LG에너지솔루션 등과 배터리셀 공장 2곳을 건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한 인도네시아 공장은 6월 완공돼 내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 여기에 투자한 금액만 20조 원이 넘는다. 광명·화성·울산에 짓는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액까지 합치면 24조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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