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를 마련하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의 히트곡을 다시 틀기 시작했다. 그의 재활용 공약 목록에는 의료보험 개혁법인 오바마케어(ACA) 폐기도 포함돼 있다.
정치적으로나 정책적인 면에서 오바마케어 폐기만큼 방향을 잘못 잡은 공약도 드물다. 오바마케어는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도운 효자 이슈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오바마케어는 2010년 제정된 후 꼬박 6년간 대다수 유권자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부정적 반응은 의료개혁법 자체와는 거의 상관이 없었다. 이 법의 시행 이후 극히 기본적 보장만 제공하는 저가 보험이 단계적으로 폐기된다는 사실에 일부 미국인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또 소수의 비평가는 정부가 전 국민의 보험 가입을 보장하거나 보험 가입자들이 접할 수 있는 구체적 의료 서비스의 종류를 특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철학적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ACA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것은 공화당의 공포 조장 캠페인이었다. 오바마케어는 까다롭고 기술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난해한 제도는 선동가들이 파고들 기회를 제공한다. 공화당은 끔찍한 내용의 새로운 법이 일자리를 없애고 정부 예산을 갉아먹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바마케어라는 브랜드는 인기가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기존 질환을 지닌 환자들에게 보험 혜택을 주고 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를 확대하며 자녀들이 부모가 갖고 있는 보험 플랜의 적용받는 기간을 늘리는 등의 ACA 주요 조항은 대중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이 법의 이름과 그 안에 담긴 인기 조항을 연결 짓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고 의회의 상하 양원이 모두 공화당 수중에 들어간 2017년 ACA는 노골적인 폐기 위협에 노출됐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지만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무보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아줄 새로운 대안을 끝내 찾지 못했다. 그들의 시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ACA 폐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바마케어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오바마케어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민주당은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했다.
건강보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공화당 정치인들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는 아예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문제를 건드렸다. 지난 주말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에 오바마케어를 끝장내지 못한 것은 “공화당의 뼈아픈 실책이었다”며 “결코 우리의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보험을 원한다고 모두가 보험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 가입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본인이 직접 지불해야 하는 의료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분적으로는 ACA 법안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생긴 하자이지만 나머지는 공화당의 줄기찬 비방 캠페인이 만들어낸 결과다.
누가 이 문제를 고치려 노력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눈길을 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건강보험에 관한 질문에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대통령 재임 때 “2주 안에 공개하겠다”고 장담한 이른바 ‘굉장한 의료개혁안’은 영원히 반복되는 2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에 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비록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인들이 낮은 가격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건의 기술적 개선 조치를 시행했다. 그는 직장보험의 해묵은 문제였던 소위 ‘가족 보장 결함’을 해결했다. 바이든의 지도력 아래 의회는 최소한 2025년까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미국인들이 단 한 푼도 내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험료 세금 크레딧을 확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바마케어 폐기 공약을 앞세워 또 한 차례 선거를 치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ACA의 가치를 아는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의료 개혁을 위해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 살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대승을 거둘 자격이 있음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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