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이나 희귀 질환에 걸린다면?’ 누구나 이런 소식을 접하면 눈앞이 깜깜해질 것이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 수술비부터 병원비·약값 등에 이르기까지 돈 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신약이 있는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면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병원 약값이라고 하면 흔히 입원비 명세서 자체로 여겨진다. 혹은 환자가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지불하는 돈 정도로 인식되곤 한다. 입원 치료를 받는 경우 약값은 진찰료, 수술 및 처치료, 진단 및 검사료, 치료재료대 등과 함께 하나의 명세서에 포함된다. 외래 진료를 받는 경우 환자가 약국에서 직접 약을 받아가면서 30%를 부담하고 암환자로 산정 특례 지정을 받은 경우에는 5%의 비용만 부담한다.
한국은 건강보험 총 진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을 약 24%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며 만성질환 치료제 처방이 늘어나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현재는 정부의 촘촘한 규제와 제약 업계의 희생 덕분에 비교적 효율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약 가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매달 고시되는 ‘약제급여목록표’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건강보험에 신규 등재된 약, 삭제될 약, 약가 인하가 발생하는 약 모두 목록에 포함된다.
하지만 한국은 약의 건강보험 등재 이후 사후관리제도가 너무 많아 약값이 떨어지기만 하고 올라갈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위험분담제(신약의 효능 효과나 보험 재정 영향 등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회사가 일부 분담하는 제도)로 등재가 된 약은 급여 범위 확대 시 경제성평가 모형 제출을 하고 약가를 인하해야 한다. 5년마다 정부와 계약 갱신할 때도 약가 인하가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건강보험 청구금액이 전년보다 일정 비율 초과됐을 때(사용량-약가연동제도), 도매상이 납품한 가격과 실제 병원에서 청구한 금액에서 차이가 날 때(실거래가 약가인하제도), 해외약가 비교 등을 통해서도 약가는 인하된다.
만약 희귀 난치 질환이나 희귀 항암제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경제성평가 생략 방식으로 등재된 약제라면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상기 언급한 내용 이외에도 분기별로 최저가를 모니터링하고 약가를 이에 맞춰 낮추는 방식이기 때문에 신약의 약가는 계속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제약 업계는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약제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하지만 다양한 제도들이 오직 약가 인하만을 목적으로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당장은 그 영향이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건강보험 등재 이후 약가관리제도들로 인해 약값이 떨어지다 보면 결국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약기업들은 신약 도입을 주저할 가능성이 있다. 약제 수를 줄이거나 극단적으로는 한국 시장 철수를 고려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정부는 여러 제도의 배경과 목적이 달라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선별등재제도를 시행한 지 15년이 넘어가면서 다양한 약가 관리 제도를 통합하고 간소화해야 할 시기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은 행정상 효율은 물론 제약 업계에서도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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