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장 정책을 놓고 보편적 지원과 선별적 지원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 시스템에서는 선별적 소득보장제도가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와 관련해서는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뒤플로 교수는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3 서울 국제 안심소득 포럼’(20~21일) 중 특별 대담에 참여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50여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안심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 가구(재산 기준 3억 2600만 원 이하)를 대상으로 기준소득 대비 부족한 가구소득의 절반을 지원하는 하후상박형 소득보장제도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기존의 소득보장제도는 ‘송파구 세모녀 사건’처럼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오 시장은 과거 지방선거 공약으로 안심소득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공약으로 기본소득을 내걸었다.
뒤플로 교수는 2003년 빈곤퇴치연구소를 공동 설립해 20년간 40여 개 빈곤국을 직접 찾아다니며 20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9년 역대 최연소이자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실험 대상자를 무작위로 지원 집단(실험군)과 비교 집단(대조군)으로 나눠 결과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 실험을 경제학 연구에 최초로 도입했다.
뒤플로 교수는 ‘한국에서 보편적 기본소득과 선별적 안심소득 중 어느 제도가 적합한지’ 묻는 질문에 “빈곤국에서는 소득이 작아도 도움을 줄 수 있고 통계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적합하지만 한국처럼 부유한 국가는 통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정부가 수입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선별 지원이 더 의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편 기본소득은 많은 사람에게 줘야 하지만 금액은 작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 지원하는게 필요하다”면서 “선별로 낙인 효과가 찍히는 것은 조심해야겠지만 최대한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논란에 대해 뒤플로 교수는 개인적 의견이라고 전제하면서 “어떤 곳에서 일할때는 국적 관계없이 동일한 최저임금이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고 믿는다"며 “노동자들이 동일하게 기회와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오 시장이 ‘외국인 노동력이 들어온다고 해서 기존 노동자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를 묻자 뒤플로 교수는 쿠바 노동자의 미국 이주,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 등을 예로 들면서 “해외 저임금 노동자가 유입된다고 해서 기존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는 그 나라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지 않는 곳에 살면서 기존 노동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인이 고령인구를 돌본다든가 식당에서 일을 함으로써 여성들의 시간이 늘어나고, 이 여성들이 경력을 쌓고 양질의 일자리를 맡는다"며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저숙련 노동자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뒤플로 교수가 오 시장에게 ‘안심소득 실험이 성공하면 어떻게 전국으로 확산시킬 것인지’ 묻자 오 시장은 “실험이 끝나고 전국으로 확산될 가치가 충분하면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을텐데, 어느 당 후보든 성공적인 실험을 대선 공약화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며 “우리나라는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돼 재원이 감당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전국적 확산이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날 시범 사업 1단계 중간 평가 결과 안심소득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1단계 시범사업 지원 가구 중 현행 복지제도 지원을 받는 가구는 222가구(45.9%), 지원받지 못하는 가구는 262(54.1%)가구였다. 또 1단계 시범사업 지원 가구 중 104가구(21.8%)가 지난달 기준 근로소득이 증가했다고 시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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