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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타이완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조영헌 고려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대만이 청나라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된 1683년 이전 대만은 청나라에 저항하며 명나라의 부흥 운동을 이끌었던 정성공 세력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정성공은 1661년 5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츠칸러우성(프로방시아 요새)을 함락하고 1662년 2월 1일(음력 1661년 12월 13일) 마침내 네덜란드의 마지막 총독 프레드릭 코예트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1624년부터 시작된 네덜란드의 대만 통치 시대는 39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대만에 온 이유는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권을 놓고 포르투갈·스페인과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대항해시대’를 열고 동아시아의 바다에 진출했던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 비해 네덜란드는 후발 주자였다. 1602년 6개 도시(암스테르담·미델뷔르흐·엥크하위전·델프트·호른·로테르담)의 상인들이 모여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상주의를 내세운 주식회사였지만 실제로 네덜란드 의회는 동인도회사에 군사 지휘권과 화폐 발행권 및 타국과 조약을 맺거나 특정 지역을 식민 통치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그들은 1619년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현 자카르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1622년에는 중국 펑후제도를 무역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명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퇴각한 뒤 아직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던 대만 남쪽의 다위안(大員, 현 대만 안핑)에 거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에 질란디아 요새와 프로방시아 요새를 수축하고 스페인과 대결을 벌였다. 한때 네덜란드는 다위안을 거점으로 한 중계무역으로 번성해 1649년에 열 군데가 넘는 동아시아 무역 거점을 구축했다. 당시 수백 명에서 많아야 수천 명 수준의 인구로 10만 명에 달하는 대만 원주민과 3만 명의 한족을 상대할 정도로 화력이 강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지만 결국 1661년부터 시작된 정성공 세력의 공격에는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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