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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가 R&D 대전환을 위한 조건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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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5년 연구개발(R&D) 예산을 큰 폭으로 확대한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1월 말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을 임명하고 지난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2차관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교체하는 등 쇄신을 꾀하는 분위기다. 선거용 발언이 아니라 ‘과학 강국으로의 퀀텀 점프’를 위한 굳은 의지의 표명이라고 믿고 싶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전년 대비 14.7% 감소했다. ‘R&D 효율화’와 ‘질적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 예산을 일괄 삭감함에 따라 과학기술계 전체의 원성이 높았다. 효율성을 저해하는 과제만을 식별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나 현시점에서는 일률 삭감이 차선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사회나 과학기술행정은 아직 그만큼 성숙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특정 부분을 도려낼 경우 부작용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도 ‘정부 R&D 예산 삭감은 부적절(63%)’하다는 국민적 여론이 과학기술인들에게는 위안이 됐다. 국민이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투자의 필요성을 지지해준 것은 일련의 사건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일이었다.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의 대전환’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여러 정부에서 시급성을 강조한 과제다. 올해 R&D 예산 삭감이 이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고,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구조 변화의 과정에 돌입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예산의 회복이다. 내년도 확대된 예산에서 R&D 투자 편대를 어떻게 갖추느냐가 대전환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예산 회복 과정에서는 복잡하고 촘촘한 제도보다는 모두가 이해하는 단순한 원칙에 기반함이 옳다. 예를 들면 많은 연구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균등성 연구’에 절반을,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새로운 생각에 전폭적 투자를 지원하는 ‘수월성 연구’에 절반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정립되면 연구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운영 방식과 평가 기준을 다르게 세울 수 있다. 균등성 연구는 지역·기관·성별·연령대 등의 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수월성 연구는 연구 그룹의 아이디어와 실행 계획, 역량만 평가해야 한다.

또 대전환의 과정에서 인재의 단절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가 시작된 시점이다. 연구자의 길을 택한 우수한 인재들이 중도 이탈하지 않도록 소중히 지켜야 한다. 최근 정부는 이공계 학생 연구원들이 학업과 연구에 매진하도록 연구생활장학금(스타이펜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진 연구자의 성장 지원 제도를 지속 투자하고 확대한다는 방침은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데는 과학기술인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인정하듯 ‘세계 최초’를 주도해본 경험은 거의 없다. 우리는 단시일에 경제발전에 기여할 주제를 택했고, 실패하면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생태계에서 연구해왔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창조적인 연구’를 희생해 경제성장을 지탱했다. 과학자들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한 후 얻을 결과가 ‘최초를 위한 도전의 기회’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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