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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땐 사람보다 예민하지만…그래도 잔디가 좋다”

죽어도 잔디_김응태 삼성물산 골프사업팀 전문위원

초록이 반가운 봄이 왔다.

코스 관리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 용인의 글렌로스 골프클럽에서 잔디에 대해 설명하는 김응태 전문위원.




봄이 온 건 반갑지만 여름이 머지않았다는 건 두렵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슈퍼 엘니뇨의 본격화로 향후 5년 간 역대급 폭염이 지속될 거라면서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더울 것”이라는 무서운 전망을 내놓았다. 유엔은 “지구 온난화 시대는 끝났다. 이젠 지구 열대화 시대”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급격한 기후 변화를 가장 빠르고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골프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기록적 폭염과 폭우에 큰 피해를 입었다. 잔디가 녹다시피 해 최대 성수기인 가을까지 애를 먹은 곳이 많았다. 더 더울 거란 올해도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이른바 기후 변화와의 전쟁이다. 전쟁의 양상과 대응을 들어보려 김응태 삼성물산 골프사업팀 코스관리그룹 전문위원(그룹장)을 만났다. 1998년 입사 때부터 30년 가까이 잔디만 들여다본 그다. 삼성그룹에 전문위원 직함을 가진 사람은 단 두 명. 에버랜드 동물원장과 김 그룹장이다.



어릴 때부터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

“고3 때 대학 진로를 정할 때 공대를 많이 가는 분위기였는데 제가 알아본 향후 유망 직업에는 조경 분야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식물, 자연 이런 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조경학과(서울대)를 갔다.”

입사 배경은?

“당시는 삼성에버랜드였다. 조경 전문 사업부도 있었고 조경과 밀접한 골프 사업부도 있었다. 그래서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됐다. 처음부터 골프 사업부에 배치 받았는데 당시는 골프장 내 잔디 관리가 그렇게 전문화한 분야는 아니었다. 그래서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해나가면 전문가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명함에 ‘나무의사’가 눈에 띈다. 일반인들한텐 생소할 듯한데.

“나무의사 자격증은 2018년에 생겨 이듬해 1호를 배출했다. 우리 주변에 공원이나 아파트에 나무들이 많지 않나. 그런 나무들의 관리를 이전까진 비전문가들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적절치 못한 농약을 과도하게 뿌린다든가 해서 나무는 물론 사람에도 피해가 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전문적인 수목 관리로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산림청 주도로 시작됐다. 지금은 생활권의 수목들은 나무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있어야만 농약 처리를 할 수 있다.”

아무나 시험에 응시할 순 없는 것 같던데.

“조경기사이거나 이쪽 실무 경력이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 나무의사 양성 기관에서 약 20일의 전문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1차 필기, 2차 실기 시험을 통과하면 된다. 이쪽 업무 종사자는 시험 문제에 조금은 더 편하게 접근할 순 있겠지만 완전히 새롭게 공부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선지 합격률이 그리 높지 않다.”

제일 바쁜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 출근이다. 손님들이 오시기 전에 코스를 살펴봐야 하니까. 출근하자마자 코스의 잔디 상태를 살피러 나간다. 걸어 다니면서 보는 게 보통이고 시간이 빠듯하면 카트를 타고 핵심적인 지역만 살핀다. 그렇게 2~3시간이 흐른다. 살핀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직원들과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향후 관리 방향을 정한다. 필요하면 회의가 될 수도 있고 최신 이슈에 대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고 직원들과 공유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안양컨트리클럽에서 근무하면서 그곳 일을 보는 게 거의 50%다. 하지만 다른 5개 삼성 골프장도 관리하고 있으니까 다른 골프장까지 가서 점검하고 그곳 직원들과 소통하는 날은 업무 마치면 저녁 7시나 8시가 된다. 부산(동래베네스트)을 다녀오는 날은 집에 가면 거의 자정이다.”

작년이 골프장 업계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할 만큼 잔디 관리가 힘든 한 해였다고 하더라. 문제는 해가 갈수록 기후 변화가 심해질 수 있다는 거고 이런 현상은 잔디 전문가로서도 큰 도전일 것 같다.

“여름철에 정말 역대급으로 기온이 높게 유지됐다. 더불어 비가 굉장히 많았다. 더위와 많은 비가 차례로 닥치니 잔디가 많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병도 많이 생기고. 일반 골퍼들이 흔히 잔디가 녹아내렸다고 하지 않나. 기상·기후 스트레스에 의해서 잔디가 체력을 다 소진해서 고사하게 되는 피해다. 돌아보면 사실 봄부터 어려웠다. 최근 들어 겨울 기상의 변동성이 굉장히 커져서 야외에 노출된 잔디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동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골프장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역대 가장 더운 여름을 겪었다는 2018년 무렵부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때부터 ‘아, 기후가 확실히 바뀌는구나’ ‘기존에 하던 패턴으론 이제 안 통하는구나’ 실감하기 시작했다.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질 거고 비도 많아질 거다. 잔디병은 계속 늘어날 거다. 피해는 여름에 집중될 거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봄에 잔디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촘촘하고 빽빽하게 밀도를 높여 놓아야 하고 또 잔디 건강의 기본인 뿌리가 더 견고하게 자리 잡도록 관리하는 게 첫 번째가 돼야 한다.”

두 번째는?

“제일 많이 피해를 입은 곳들을 돌아보니 배수가 안 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미국의 경우는 섭씨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도 골프장들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장마가 없기에 건조한 조건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은 스프링클러로 물 관리만 제대로 해줘도 더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잔디는 습도가 높은 후텁지근한 환경에 정말 취약하다. 그래서 배수가 안 되는 지역에 배수를 개선해주는 작업이 중요하다. 모래땅으로 바꿔준다든지 지하에 매설하는 배수 시설을 정비해준다든지 하는. 또 기온이 점점 높아지는데 그걸 잔디한테 그냥 견디라고 할 순 없다. 설비나 관리 측면에서 잔디 표면 온도를 낮추는 작업도 꾸준히 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송풍기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송풍기를 세우는 골프장이 많지 않았다. 어쨌든 인공적인 설비라 꺼려했고 코스 곳곳에 전기를 돌려야 가능한 설비니까. 이제는 필수다. 없으면 여름을 나기가 힘들다. 송풍기를 돌려주는 것만으로도 잔디한텐 엄청난 도움이 된다. 온도를 낮춰줄뿐더러 공기를 순환시켜 잔디의 광합성을 돕는다. 이런 식으로 설비적인 뒷받침이 충분해야 한다. 우리가 열대야에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잠자기 힘들 듯 잔디도 바람을 맞아줘야 휴식하고 회복해 다음날 스트레스에 저항할 힘이 축적된다.”

골프장 입장에선 비용이 계속 늘어나는 것 아닌가?

“저희 내부 조사나 언론사 조사만 봐도 ‘골프장 선택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뭔가’라는 물음에 코스 상태가 늘 1등 아니면 2등이다. ‘왜 베네스트 골프장을 선택하셨습니까’란 물음에도 코스 품질 때문이라고 답한 분들이 80% 정도였다. 복수 응답이긴 했어도 압도적 1위였다. 코스 품질 향상과 유지가 골프장 산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경쟁력이라는 판단이 있어야 꾸준한 재투자도 이뤄진다고 본다. 잔디, 스프링클러, 배수 시설 등은 다 수명이 있다. 낡으면 개선을 해줘야 하는 거다. 좋은 퀄리티 유지를 위해 그런 필요성을 경영자 분들이 더 널리 인지하면 좋겠단 바람이다.”

지난해 투어 대회 코스 중에도 우리가 최상급 코스라고 생각했던 곳 또한 역부족으로 피해를 봤다.

“안 그래도 관련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1번 원인은 역시 기후 변화에 의한 과도한 스트레스일 거고 두 번째는 최적의 대응 방안을 수립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을 거다. 똑같이 기상 상황이 나빴는데 상대적으로 괜찮은 골프장이 있었고 나빠지는 골프장이 있었다는 지적을 보면 관리 부분에서 약간 대처가 미흡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잔디 품종에 따른 영향의 차이도 있을 텐데.

“켄터키블루그래스나 벤트그래스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 기후다. 악조건 속에 투어 대회 개최에 걸맞은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려다 보니 잔디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호 위주로 관리를 했던 골프장보다 좀 더 망가지는 결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켄터키블루그래스가 우리나라에서 더는 쓰기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단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럼 앞으로 우리나라 환경에 최적화된 잔디는 어떤 잔디가 될까?

“켄터키블루그래스가 10~15년 전에 비해서 우리나라 환경에 취약해진 건 과습이나 고온에 견디는 저항성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벤트그래스도 그렇지만 벤트그래스는 그린에 주로 깔리기에 조성할 때부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집약적인 관리가 들어간다. 그래서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페어웨이 등 넓은 지역에 조성된 벤트그래스는 아주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는 사실 좀 어려워서 피해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보면 난지형 잔디인 중지로 바꾸려는 골프장들이 있다. 바뀌는 기후에 맞게 변화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또 잔디 업계에서도 기존 중지보다 더 나은 퀄리티의 난지형 잔디들을 육종하려는 시도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품종들인가?

“세녹, 밀록, 스텔라, 그린에버 등이다. 중지보다 잎이 더 촘촘하고 밀도가 높아서 플레이 퀄리티는 훨씬 좋다. 난지형 잔디라 여름철 기후에 강한데 문제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 정도까진 초록빛을 잃는 특성이 있다. 기후 측면으론 이런 품종이 훨씬 더 맞는 잔디라고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고객 선호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골프장들은 도입을 주저하는 측면이 있다.”

잔디 세미나에서 마이크를 잡은 김응태 전문위원.


잔디환경연구소 주관의 잔디 세미나 얘길 해보자. 다른 골프장이나 관계자들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정보를 공유해도 괜찮은 건가?

“세미나의 시작은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얘기 돼온 이슈나 특별한 사항들을 자체적으로 정리하고 저희끼리 공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이걸 그냥 내부에서만 공유하기보다 폭넓게 공유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연구소가 외부 골프장이나 축구장들의 컨설팅을 맡고 있기도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걸 전해드리는 것뿐 아니라 외부 분들이 경험한 사례와 의견, 노하우를 들어보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공개 세미나로 확대했다.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워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이 올 수 있게 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골프사업팀 잔디환경연구소는 경기 용인의 삼성물산 경험혁신 아카데미에서 골프장과 프로축구 K리그 경기장의 잔디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한다.)

참가 열기가 뜨겁나?

“올 1월 2회 세미나에 60명 가까이 오셨다. 첫 회인 지난해는 70명 이상이었다. 첫 회는 골프장 지배인이나 대표분들까지 오셨는데 2회 때는 코스 관리 현업에 계신 분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그래서 좀 줄었다. 대표나 지배인 등 운영 쪽에 계신 분들한테도 코스 관리가 이렇게 어렵고 그래서 지원이 뒷받침돼야 퀄리티가 나온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1회 이후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코스 관리자들 사이에선 강의 내용이 약간 제너럴하단 의견이 있어 2회 땐 코스 관리자만 모아서 좀 더 전문적으로 들어갔고 토론도 이뤄졌다.”



세미나 자료 준비도 보통이 아니었겠다.

“1시간 강의에 사흘 정도 자료를 정리했고 전날인 일요일 밤 12시까지 계속 몰두했었다. 아내가 ‘쉬는 날 뭐하냐’ ‘정도껏 해야지’라고 하더라.”

잔디 관리에 있어 시비, 시약, 급수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시비나 시약에 있어 실수가 나오면 바로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결국 다 중요하다. 최근 들어 중요성이 더 대두되고 있는 게 급수다. 물 관리를 잘하는 게 잔디의 건강을 높이는 데 굉장히 중요하단 인식에서다. 토양의 수분을 적정하게 유지하고 필요할 때만 물을 주고 이런 식으로 해줘야 잔디 뿌리가 건강해지고 잔디가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여름철 잔디 피해의 가장 큰 이유도 배수 불량이다.”

어떤 물 관리가 이상적인가?

“물 관리도 스프링클러를 그냥 충분히 틀어준다고 해서 건강하게 키우는 게 아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면 잘 죽지 않나. 마르게 해서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애지중지 물을 많이 줘서 그런 경우가 많다. 잔디도 그렇다. 물을 너무 많이 주거나 과습 상태로 관리하면 연약해지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진다. 그래서 물 관리가 굉장히 어렵고 전문적인 분야다.”

잔디 색을 보면 물 관리가 잘 됐다, 안 됐다 알 수 있나?

“색으로도 표시가 나긴 하지만 토양 수분을 측정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측정 도구가 있는데 그걸 아침에, 낮에, 저녁에 찔러 넣어 수분 분포를 측정한다. 영업이 끝날 때쯤 토양 수분이 15%였다면 ‘이대로 두면 내일 낮 동안 증발한 수분 때문에 건조 현상이 발생하겠구나’ 예측하는 거다. 그래서 오늘 밤에 어느 정도로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는 계산이 선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서 스프링클러 가동 시간을 결정하는 거다. 스프링클러가 균일하게 물을 살포하지 못할 때도 있다. 돌아보면서 수시로 체크해야 하고 건조 피해가 잦은 곳은 사람이 별도로 물을 주는 관리도 필요하다.”

기술 발전으로 과거에 비해 코스 관리도 좀 수월해진 게 있나?

“비료 살포 장비의 자동화가 가장 큰 변화다. 양과 농도의 결정을 사람의 감에만 의존했었는데 요즘은 장비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살포하는 양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벙커 주변처럼 잔디 깎기가 쉽지 않은 곳은 사람이 플라잉 모어로 일일이 관리해야 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장비로도 가능해졌다. 스프링클러나 송풍기의 홀별 온·오프 조정도 스마트폰으로 한다. ‘10분 가동 후 중지’ 등 세부 세팅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혁신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무인으로 잔디 깎는 장비도 개발되고 있다는데 골프장에서 사용할 정도의 정밀도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안다.”

일반적인 아마추어 골퍼들은 페어웨이에 벤트그래스를 깔았다고 하면 일단 고급이고 쳐보고 싶단 생각을 가진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시는지.

“질감이 굉장히 좋고 최고의 샷 기술을 발휘하기에도 적합한 잔디인 것은 맞다. 하지만 벤트그래스 코스면 다 좋다는 인식은 좀 곤란하다. 그 지역의 기후에 맞는지 살펴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 기후에 맞지 않는데도 벤트그래스를 식재해서 여름철에 잔디 밀도가 떨어지고 피해가 반복된다면 안타까운 일일 거다.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선 관리 측면만 따지자면 중지 코스가 잔디를 촘촘하고 건강하게 관리하기가 더 수월하다. 현재 켄터키블루그래스를 난지형 잔디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간 골프장들이 꽤 있다.”

삼성물산 골프사업팀의 잔디환경연구소


라운드가 드문 주말 골퍼들은 티잉 구역에 매트가 깔린 곳을 만나면 기분이 상한다. 꼭 매트를 깔아야 하나?

“충분히 공감한다. ‘천연 잔디에서 치려고 돈 낸 거지, 이럴 거였으면 스크린골프 갔다’라고도 하신다. 그런데 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단 걸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겨울철엔 잔디가 자라지 않는데 여기서 손상이 가게 되면 아예 회복을 못한다. 봄부터 가을까진 디봇이 생겨도 1~2주면 다시 줄기에서 잔디가 나와 회복되지만 겨울엔 자라질 않아 피해가 누적만 될 뿐이다. 그래서 특히 파3 홀처럼 티잉 구역 면적이 넉넉지 않은 곳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골퍼분들이 ‘잔디가 안 자라는 시즌이어서 그렇구나’라고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고 골프장 입장에서도 티잉 구역이 좁다면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든가 조치가 필요하단 생각이다.”

골프 코스 가운데 보통 어느 구역의 관리가 가장 중요한가?

“그린 주변의 잔디 상태가 나빠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린 위주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니 주변부의 잔디는 과습 상태가 되거나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투어 프로 선수들이야 그린 적중률이 70~80%지만 우린 그린을 벗어날 확률이 70~80% 아닌가. 그래서 그린 주변이 많이 밟힌다. 그린 관리 장비나 작업도 그 주변에서 하기 때문에 그린 주변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가 또 플레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더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플레이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 지역을 어떻게 전문적으로 집중 관리하느냐에 따라 골프장 퀄리티와 관리자 기술력이 판가름 난다.”

18홀 코스에 잔디를 식재하는 순수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면적에 따라, 잔디 종류에 따라 다 달라서 계산이 어렵다. 그래서 그린 잔디만 한 번 따져봤다. 밀도가 높고 더위에 대한 스트레스에 저항성이 좋은 잔디로 교체한다고 하면 4~5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PGA 웨스트 골프장은 그린 잔디를 1년에 9홀씩 다 바꿨다고 하더라. 퀄리티가 좀 낮아진 잔디들을 최신 잔디로 바꾸는 투자다.”

잔디 외길을 걷고 계신다. 제일 큰 보람과 위기는 어떤 것들이었나?

“역시 고객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시련이라면 역시 잔디 상태가 안 좋았을 때 아니겠나. 2013년 무렵에 가평베네스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굉장히 비가 많았던 여름에 잔디가 일시적으로 나빠져서 회복시키느라 1년 정도를 엄청나게 노력했던 기억이다. 가장 집중했던 넉 달 정도는 주 6.5일을 일했던 것 같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잔디가 막 반응을 하니까 불안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런 시련을 동반하는 일인데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잔디의 매력은 뭔가?

“섭씨 35도, 37도 이래도 야외에 나가 일해야 한다. 사람도 힘들지만 잔디는 더 힘드니까. 잠깐 방치하면 바로 죽어버린다. 하지만 말은 안 통해도 적절한 조치를 해줬을 때 좋아지는 걸 보는 데서 큰 매력을 느낀다.”

겨울엔 좀 여유가 있겠다.

“1년 내내 힘들기만 하면 일 못한다. 겨울은 잔디가 안 자라는 시기라 여유가 있다.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직원들은 한 달 휴가를 가기도 한다. 따뜻한 나라 가서 골프 실력을 늘려오거나 배낭 여행을 갔다 온다. 골프라는 매력적인 스포츠를 좀 더 가까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점도 뚜렷하다.”

전문성을 높인다는 건 어떤 얘기인지.

“겨울철 비수기에 집중적으로 공부해 자격증을 몇 개 딴 게 있다.”

어떤 것들인지 소개 좀.

“조경기술사, 나무의사, 드론 조종, 굴삭기 운전 자격증이다.”

굴삭기까지?

“코스 관리하는 부서에 보면 굴삭기가 다 있다. 모래 퍼 담고 땅 팔 일도 있고 하니. 평소 관심을 갖고 있었고 도전해서 땄다. 드론 자격증도 좀 어려웠다.”

코스를 이용하는 골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디봇 메우고 그린의 피치 마크 수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또 있을까?

“거기에 덧붙인다면 벙커 관련 에티켓이다. 자기 발자국 정리하고 나오는 게 가장 기본일 텐데 거기에 더해 벙커에서 나오면서 골프화에 묻은 모래를 터는 작업을 꼭 해주시면 좋겠다. 그린까지 벙커 모래가 옮겨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모래가 많으면 볼의 구름이 현저히 안 좋아진다.

벙커 샷을 했던 클럽으로 신발을 툭툭 한 번씩만 털어줘도 모래는 다 털린다. 투어 프로들도 보면 벙커 샷 뒤 꼭 하는 게 신발을 터는 작업이다. 또 그린에서 골프화를 끌면서 걷는다든지 스파이크가 너무 강하게 돌출된 제품을 신는다든지 하는 것도 주의해주시면 좋겠단 바람이다. 자국이 남았거나 잔디가 들려있으면 퍼터로 눌러주시는 것도 잔디 피해를 막는 방법 중 하나다. 잔디가 들려있으면 수분 증발이 빨라서 건조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아진다.”

앞으로 계획, 하고 싶은 일은?

“갈수록 코스 관리자의 기술력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 기존엔 선배들이 해왔던 방법 그대로만 해도 평타는 쳤다고 본다면 이젠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 작년에 통했던 게 올핸 안 통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기술력이 있어야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해 잔디 관리에 있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할 생각이고 후배들 역량을 더 높이기 위한 내부 교육과 자료 제공에도 힘쓸 것이다.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제 역할이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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