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20년 만에 국채 매입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약 5개월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국채 매입 등 공개시장 운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중국 정부가 올해 5%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정책 지원과 자금 투입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당국이 발행한 시 주석의 연설문 모음집을 인용해 시 주석이 지난해 10월 30일 열린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통화정책 도구 상자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민은행은 공개시장 운영을 통해 국채 거래를 점차 늘려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SCMP는 “시 주석의 지시 이후 아직 국채 매입이 재개되지는 않았지만 결국 시간문제”라고 논평했다. 인민은행은 2000년대 초 이후 20여 년간 국채 매입 방식의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다.
SCMP는 중국 정부가 중앙은행에 국채를 더 사라고 지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전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공개시장 운영은 미국 등 서구 선진국이 주로 활용해온 통화정책이다. 중국의 경우 시중은행이 일정 비율의 금액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의무화하는 지급준비율제도를 통해 시중 통화량을 조절해왔다.
중국의 통화정책 전환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각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 정부가 올해 ‘5% 성장’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통화 수단을 활용하기로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와 같은 보조금 지급이나 정책 부양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찾은 고육지책이라는 이유에서다.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중화권 수석이코노미스트 딩솽은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은 쉽고 효과적인 도구”라며 “중국 법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유통시장에서 국채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경제활동을 촉진하며 중국 국채의 수익률 곡선을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돈풀기로 경기를 부양하고 재정적자분은 인민은행이 메워주는 ‘서구식 양적 완화’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최근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화하며 돈줄이 마르는 중국 내 상황도 국채 매입 재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외환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의 대중국 직접투자 순유입액은 330억 달러(약 44조 5300억 원)로 전년 대비 81.68% 감소했다. 1993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이날에는 중국의 숙원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동남아시아에서 대규모 자금난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SCMP는 27일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이 동남아에서 추진 중인 24개 프로젝트에 770억 달러(약 104조 원)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현재 520억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또 210억 달러 규모의 5개 프로젝트는 취소됐고, 50억 달러 규모의 3개 프로젝트는 진행 가능성이 낮으며, 진행 중인 8개 프로젝트 가운데 2건도 규모가 상당히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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