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과반 의석을 얻는다면 24차례나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 토론회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 등 ‘정책 청사진’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다. 윤석열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부가가치세 한시 인하, 공시지가 현실화 폐지 등 주요 정책이 야당의 동의 없이 실현이 불가능한 법 개정 사안이기 때문이다. 반면 여권이 승리할 경우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 개혁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서울 편입, 감세 방안들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까지 드러난 4·10 총선 판세상 야권의 과반 의석 달성 가능성이 커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인 ‘감세’ 정책은 존폐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금투세 폐지는 무산되고 2025년부터 과세가 시행될 가능성이 커진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모두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여당 단독으로 금투세 폐지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일환으로 추진 중인 자사주 소각 및 배당 확대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법인세법 개정이 어려워 통과가 요원해진다.
물가 안정을 위해 일부 품목의 부가가치세를 현행 10%에서 5%로 인하하겠다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약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대부분도 수포로 돌아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민생 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기하겠다고 했는데 야당의 동의 없이는 부동산 공시법 개정이 어렵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폐기를 위한 임대차보호법 개정도 무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야권 과반 의석 시 민주당의 정책들은 탄탄대로에 오른다. 금융 당국이 신중히 접근하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허용 등은 야당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즉각 추진할 수 있다. 주 4일제 시행 기업에 대한 지원과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확대 등도 다시 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양곡관리법·간호법·방송3법 등도 재추진돼 대통령실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속 대통령에게 남은 정책 수단은 ‘시행령 개정’뿐이어서 이른바 ‘시행령 정부’로 전락할 우려도 크다. 법 개정을 할 수 없는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이 91개 부담금 중 32개 부담금을 폐지·축소하겠다며 영화 입장권 부담금 폐지를 홍보했는데 이는 법개정 사안이다. 32개 부담금 중 시행령 개정으로만 부담금 요율을 인하할 수 있는 것은 14개뿐이다.
여당이 승리한다면 수세에 몰린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을 필두로 향후 연금과 노동 개혁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구리·김포 등 경기도의 서울 편입을 골자로 한 ‘메가시티 서울’도 야당의 반대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아울러 통신비 경감을 위한 단말기유통법 폐지,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 국회 세종 완전 이전 등 굵직한 정책들이 궤도에 오르면서 총선 2년 뒤 열리는 지방선거, 3년 뒤 열리는 대통령선거까지 여권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이 공약으로 내걸지는 않았지만 추진 의사를 나타낸 상속세 완화도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야 어느 쪽이 과반을 차지하더라도 저출생 대책과 기후 공약만큼은 여야 합의로 처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출생 공약의 경우 여당은 제도 개선, 야당은 지원금 확대로 각론은 일부 다르지만 육아휴직비 인상, 남성 육아제도 확대 등은 이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경제 활성화,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확대 등 기후 대책도 여야 간 합의를 거쳐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또 자영업자를 위한 전기료 감면 등 고물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소상공인 지원 확대에도 여야가 힘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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