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의 대승으로 끝난 지난 4·10 총선 결과를 두고 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통상 여권의 대패는 정부의 국정 기조에 맞춘 사업을 준비하던 금융투자 회사에도 큰 충격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외려 불확실한 정책 공약으로 커졌던 시장 혼란이 앞으로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시각도 감지된다. 한 대형 상장사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이제는 투자할 때 대통령실 눈치를 덜 보려 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증권가의 이런 반응은 정부가 주식시장을 선거 전략의 도구로 과도하게 활용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정부의 총선용 증시 개입 의혹은 일부 투자자의 요청이 있다는 이유로 공매도를 돌연 전면 금지한 지난해 11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통령실과 여당은 총선 정국이 막 시작된 시점에 ‘한국거래소의 요청’이라는 법적 요건도 요식행위로 치부한 채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외국인투자가들이 떠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부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1월 2일 거래소 증시 개장식을 신년 첫 행사로 선택했다. 이 자리에서 소액주주의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확대 등을 공언했다. 이후에도 당정은 주식 양도소득세 대폭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주가 부양책의 정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세제 개편 등 정책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속도전을 벌이다 보니 한계가 불가피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는 경제성장과 실적 개선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주식시장은 기업 실적, 금리, 환율, 인구구조, 안보 등 모든 변수가 총집합돼 움직인다. 인위적으로 부양할 수 있다면 이전 정부도 이를 가만 놓아뒀을 리 없다. 더구나 주가 상승이 여당 지지율로 곧장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이번 총선이 1400만 명의 개인투자자를 유권자로 보고 시장 개입에 가까운 설익은 대책을 쏟아내는 데 따른 리스크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벌써부터 공매도 재개 시점을 잡기도 애매해지는 등 시장의 후유증이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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