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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 가상자산 시장 좀먹는 '광신도'의 집착

■비이성적 암호화폐(제크 포크스 지음, RHK코리아 펴냄)

테더 CFO 실체를 찾아 나선

美블룸버그 탐사 기자 포크스

2년간의 '암호화폐 추적' 여정

제도 없이 사이클에만 기댈땐

'제2 FTX 파산 사태' 나올 것







“숫자는 상승한다(Number go up).”

2021년 6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1’ 컨퍼런스. 암호화폐를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은 1만20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암호화폐거래소 크라켄의 임원인 댄 헬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가격 상승 기술 자체가 비트코인의 차별점이자 기술력이라는 설명에 참가자들은 열광했다. 이는 비트코인의 만트라가 됐다.

이후 5개월 만인 11월 8월 비트코인은 사상 최대치인 6만8000달러(약 9300만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암호화폐 시장 전체의 가치는 3조 달러(약 4103조원)에 육박했다.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세는 암호화폐에 대한 ‘포모(FOMO·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 같다는 두려움)’를 부추기며 또 한 다른 숫자 상승을 이끌어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에서 탐사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금융 사기 보도로 명성을 떨쳤던 저자 제크 포크스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광풍을 보며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돈을 쉽게 버는 사람들에 대한 얄미움이었다. 이 보다 큰 건 의아함이었다. 달러 가치에 일대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은 개념상 안전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에 대한 담보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가장 많은 양이 거래되고 있는 테더 코인이었다. 하지만 테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들도 테더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돈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때부터 2년에 달하는 그의 암호화폐 추적 여정이 시작됐다. 그 결과물이 ‘비이성적 암호화폐(RHK코리아 펴냄)’다. 테더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성형외과 의사 출신의 이탈리아인 지안카를로 데바시니의 실체를 찾아내는 게 목표였다.

뒷걸음질 치다가 소를 잡는다고 테더의 최종 보스에 접근하기 위해 취재를 하던 중 만나게 된 인물은 뜻밖의 수확이었다. 당시 록스타로 꼽힌 FTX의 샘 뱅크먼-프리드 창업자였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바하마에서 뱅크먼-프리드와 하루를 보냈다. 당시 뱅크먼-프리드를 만나고 느낀 점을 저자는 이 같이 술회한다. “뱅크먼-프리드의 FTX와 같은 암호화폐거래소는 본질적으로 거대한 카지노였다. 베팅하고 싶을 때 이들은 테더코인을 먼저 구매했다. 마치 몬테카를로 포커 게임방과 마카오 마작 게임방이 도박꾼들을 한 명의 중앙 계산원에 보내 게임칩을 사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카지노 주변부에서는 ‘돼지 도살’이라는 형태의 로맨스를 가장한 암호화폐 투자 사기가 벌어지고 있었고 일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암호화폐로 인해 인신매매까지 벌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FTX 파산으로 많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은 뱅크먼-프리드가 갖고 있던 공리주의에 관한 신념이다. 그는 더 많은 기부를 위해 더 위험한 경로를 선택해 돈을 벌겠다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생각했다. 뱅크먼-프리드는 이를 위해 금융 기관에서 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큰 리스크에 베팅해 큰 돈을 벌 기회를 모색했고 그 결과는 FTX로 이어졌다. 뱅크먼-프리드는 “기꺼이 상당한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고의 방법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라고 했다.

뱅크먼-프리드는 기부를 위한 기댓값을 최대화하기 위해 고객들의 예치금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거나 마음대로 썼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투자금을 잃는 위험이 기부를 통해 누군가가 얻게 될 이익보다 많은가 떠올리면 고개를 젓게 된다.

뱅크먼-프리드는 미국 뉴욕 검찰에 의해 기소된 후 보석으로 풀려나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있는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다. 암호화폐거부들이 모여드는 곳은 바하마와 마이애미 해변에서 법정으로 바뀌었다. 이 와중에도 테더는 살아남았고 오히려 큰 돈을 벌었다. 2022년 내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자 한 분기에만 15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

저자는 비트코인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이 숫자 상승 능력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는 이를 따라갈 수 있느냐’다. 제도의 뒷받침없이 사이클에만 기댄다면 또 다른 뱅크먼-프리드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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