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재건축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난 대선 전 1기 신도시가 속한 5개 시의 시장들이 모여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지원해달라고 해 시작한 화두가 대선을 거치며 500% 용적률의 재건축 공약으로 제시되더니, 총선을 거치며 용적률이 750%까지 올라갔다. 시장 압력이 약한 곳의 재건축까지 정치적 압력으로 밀어붙이자니 이런 무리수가 두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얼마 전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선정 및 규모 기준이 발표됐다. 1기 신도시 주택 재고의 10% 정도인 2만 6000가구+알파(α)가 1차 선정 규모다. 발표된 선정 기준 중 ‘주민동의율’에 60점을 배정한 것은 진행 속도를 높이겠다는 국토교통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그런 의지는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라는 과속의 로드맵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다사다난한 재건축 사업이 그런 속도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비판과 그런 속도로 진행된다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전월세난에 대한 우려가 많다.
제시된 1기 신도시 재건축 방안의 특징은 여러 단지를 묶는 블록 단위 통합 재건축을 통해 필요한 주민 시설이나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전체 구도는 광역적 정비사업을 통해 국지적 정비사업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도로와 같은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겠다던 서울시의 뉴타운사업과 궤를 같이한다. 뉴타운사업을 통해 광역적 정비사업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했기 때문에 바람직해 보이는 통합 재건축의 현실성에 의심이 간다.
통합 재건축에는 해당 신도시의 고용 자족성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담겨 있다. 5개 신도시 중 분당은 인구 300만 명에 가까운 배후 지역이 형성돼 확고한 지역 상업 및 고용 중심지로 성장하고 판교 테크노벨리가 성공하는 배경이 됐다. 하지만 나머지 1기 신도시들은 자족성 달성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성공적으로 보이는 분당도 서울로의 통근율이 40%에 가까워 여전히 서울과 강한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 파편적 통합 재건축을 통해 1기 신도시의 고용 자족성을 실효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중심 도시의 흡입력을 오히려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입지적 경쟁력이 약한 1기 신도시의 과도한 고밀 재건축은 서울 대도시권의 낭비적 통근 문제를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월세 시장의 안정책과 관련해 개별 단지들의 재건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주 단지의 조성은 그리 현실적인 대안이 못 된다. 오히려 광역적 주택 시장 안에서 3기 신도시 입주 시점과 연계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이 목적이라면 3기 신도시의 개발 밀도와 진행 속도를 높이는 것이 1기 신도시 재건축보다 더 효과적인 방안이다.
다가오는 인구 축소기에는 용적률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 성장기에 제도화한 개발 이익 환수 장치들의 현실성을 재고할 시점이다. ‘재건축부담금’의 폐지는 우선되는 선택이다. 1기 신도시와 주변 택지개발지구의 모든 아파트가 재건축될 수는 없다. 정치적 압력이라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시장 압력에 순응하는 속도와 강도로 회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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