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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우린 몰라’…펜싱여걸들의 미친 한판, 파리를 잠재우다[올림픽]

세계1위 홈 자존심 佛꺼버린 女사브르 대표팀

“그냥 미치면 된다기에 정말 미쳐버렸다”

역대 최고銀…시상식선 태극기 귀걸이 뽐내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윤지수(왼쪽부터), 전하영, 전은혜, 최세빈이 3일 파리 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파리=성형주 기자




결승에서 공격에 성공한 뒤 포효하는 전은혜. 파리=성형주 기자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최세빈(24·전남도청)은 “우리 모두 미친 것 같다”며 웃었다. “(남자 사브르) 박상원 선수가 우리 훈련하는 데 찾아와서 ‘세빈아, 피스트 올라가서 그냥 미치면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언니들한테도 ‘미치면 할 수 있대요’라고 했는데 정말 우리 모두 미친 것 같아요.”

3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준결승은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경기 중 가장 ‘미친’ 경기로 기억될 만하다. 어두운 전망을 깨고 메달 잔치를 벌이는 이번 대회 한국 스포츠의 질주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한판이었다.

상대는 팀 세계 랭킹 1위에 일방적인 응원까지 등에 업은 종주국 프랑스였는데 메달 기대가 크지 않던 한국은 45대36으로 프랑스를 압도해 그야말로 ‘언더독의 대반란’을 보여줬다. 한국 여자 사브르가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었는데 이번 대표팀은 결승까지 진출해 우크라이나에 42대45로 석패하면서 역대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수확했다.



한국은 랭킹은 4위지만 프랑스에 한 수 이상 아래로 여겨졌다. 세대교체 속에 최세빈, 전은혜(27·인천중구청), 전하영(23·서울시청) 3명이나 새 얼굴이었다. 기존 멤버는 윤지수(31·서울시청)뿐이었다.

모두가 열세를 예상했지만 우리 대표팀은 눈빛부터 달랐다. 이번 대회 개인전 금·은메달리스트인 마농 아피티브뤼네와 사라 발제르를 1·2라운드에 앞세운 프랑스를 맞아 한국은 2001년생 전하영과 2000년생 최세빈이 패기로 몰아붙이며 2라운드 10대5의 초반 주도권을 잡았다. 상대 이름값 따위는 아예 계산에 없는 거침없는 펜싱으로 프랑스 홈 관중을 혼란에 빠뜨렸다.

최세빈과 아피티브뤼네가 격돌한 4라운드에서 20대11로 격차가 벌어지자 프랑스는 5라운드 전하영의 상대를 세실리아 베르데르에서 사라 누차로 교체했고 전하영은 25대18로 마무리했다. 이어진 6라운드에서 한국도 윤지수를 전은혜로 바꿔 굳히기를 노렸고 30대23으로 리드를 지켰다.

8라운드에서 전은혜가 아피티브뤼네를 상대로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공격을 뽐내며 40대31로 달아나 승기를 잡은 한국은 전하영이 발제르와의 9라운드까지 9점 차를 유지하며 결승행을 완성했다. 전은혜는 남자 사브르 도경동을 연상하게 하는 ‘특급 조커’로 맹활약했다.

넷은 함께 오른 시상대에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 모양 귀걸이를 뽐내는 세리머니를 했다. 전은혜는 “우리 팀 정말 잘하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4년 뒤 금메달 따려고 이번은 은메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당당한 펜싱 여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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