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두 예술가의 목소리, 그뤼네발트와 힌데미트 [아트씽]

[음악이 흐르는 미술, 미술이 깃든 음악]

그뤼네발트의 16세기 '이젠하임 제단화'

고통 극복과 승화…치유와 소망의 聖畵

20세기 음악가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운터린덴 미술관의 '이젠하임 제단화' /사진=김보라 ⓒBora Kim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방의 주요 도시인 콜마르에서 남쪽으로 26km 떨어진 곳에 이젠하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젠하임 제단화(Isenheim Altarpiece)’로 더 친숙한 지명일 수도 있는데 이 곳에는 중세시대 성 안토니우스 수도회에서 설립한 자선 병원이 있었다. 안토니우스는 피부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예술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데, 이 병원은 맥각균에 의한 피부질환으로 죽음과 직면한 농민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한 상징적 역할로 병원의 예배당에 ‘이젠하임 제단화’가 제작되었다. 이 제단화는 북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독창적 화풍을 구축했던 당대 유명한 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1470경~1528)가 맡았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고향 이름을 간직한 채 13세기에 지어진 콜마르의 수도원으로 1852년에 옮겨졌다. 작품이 이전한 이듬해 수도원은 본래의 모습을 지켜내면서 운터린덴 미술관(Unterlinden Museum)으로 개관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이 도시를 찾고 있다.

13세기 콜마르에 지어진 수도원은 1852년 이젠하임 제단화가 옮겨진 이듬해 '운터린덴 미술관'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사진=김보라 ⓒBora Kim


13세기 수도원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탄생 한 운터린덴 미술관 내부 /사진=김보라 ⓒBora Kim


‘이젠하임 제단화’는 세 겹으로 구성된 폴립티크(polyptych·여러 개의 패널로 나누어 표현하는 방식) 작품으로 중앙에서 패널을 두 번 열게 되어 있다. 제단이 모두 닫힌 상태에는 중앙에 십자가의 예수와 양 옆에 성 안토니우스와 성 세바스티아노가 있으며 하단패널에는 예수의 무덤 장면이 있다. 성탄절과 부활절, 성모축일에는 패널이 한번 열리고 수태고지, 천사의 콘서트, 그리스도의 탄생, 부활 장면이 나타난다. 성인 축일이 되어 제단이 완전히 열리면 중앙에 조각가 하게나우어(Nikolaus Hagenauer·1445–1538)의 성 안토니우스 목조 작품을 볼 수 있고, 양 옆에는 그뤼네발트의 성 바오로와의 만남 장면과 성 안토니오스 유혹 장면이 드러난다.

1512~1515년경 제작된 이젠하임 제단화 /사진출처=Wikipedia


1512~1515년경 제작된 이젠하임 제단화 /사진출처=Wikimedia


이처럼 이젠하임에서는 작품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없었지만, 운터린덴 미술관에서는 작품이 해체되어 전시되고 있어 공간을 이동하면서 작품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첫 번째 패널에서는 예수의 죽음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 극한 고통 속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화가는 죽어가는 환자를 예수의 모습에 투영하고자 했던 것일까. 두 번째 패널에서 극적으로 전환되는 탄생과 부활의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죽음 앞에서 치유의 소망을 담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 패널에서 성 안토니우스는 악마와 괴물에게 온갖 공격을 당하고 있지만 끝까지 버티며 견디어 내는 모습을 강하게 표출하여 어려운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게 한다. 작품의 아우라는 시대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깊이 안착하는데 이는 이 작품이 일반적인 종교화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이젠하임 제단화 중 십자가의 예수 부분 ⓒ Wikimedia




4세기가 지나고 한 음악가는 이 그림 앞에서 파고드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시간의 간극을 초월하여 두 예술가의 심상을 교차시키며 영감으로 작용한다. 16세기의 화가는 종교개혁의 회오리와 농민전쟁의 실패 속에서 희생되는 나약한 인간을 대변하고자 했고, 20세기의 음악가는 전쟁과 이념적 갈등의 풍파 속에서 예술적 자유에 관해 고뇌하며 억압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 교차점에서의 발화로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는 현대 음악가 힌데미트(Paul Hindemith·1895~1963)의 음악 속으로 온전히 스며들어 울려 퍼지게 된다.

힌데미트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모델로 하여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라는 이름으로 교향곡과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오페라를 구상하던 중 명지휘자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ängler·1886~1954)의 제안으로 교향곡을 먼저 완성하였고 1934년 베를린 필과 초연했다. 그러나 당시 나치 정권의 힘이 가장 강했던 시기에 이 곡이 연주되면서 힌데미트는 결국 퇴폐적인 음악가로 낙인 되었다. 오페라도 1935년에 완성되었지만 독일에서는 공연되지 못하고 3년이 지나 스위스 취리히에서 첫 공연을 열 수 있었다.

이젠하임 제단화 중 천사의 콘서트 부분 ⓒ Wikimedia


‘화가 마티스’, 교향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었고 오페라는 7장으로 만들어졌다. 교향곡 1악장 ‘천사의 콘서트’는 오페라 서곡과 6장에서 나오는 ‘새 천사가 달콤한 노래를 부르네’의 선율로 이어진다. 제단화에서는 두 번째 그림으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하는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위해 연주하고 있는 장면이다. 2악장 ‘매장’은 오페라 7장에 나오는 간주곡이 되고 죽음의 무거운 분위기와 부활을 예견하듯 그와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3악장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은 오페라 6장에서 온갖 유혹에 시달리며 벗어나고자 애쓰는 화가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제단화의 세 번째 패널의 그림에서 공격받는 안토니우스의 그림이 모티브가 되었다. 예술적 공감의 결실로 오페라와 교향곡, 그리고 제단화는 긴밀하게 엮어졌고 마치 하나의 작품인 양 서로에게 스며든다. 특히 오페라는 작곡가 자신이 직접 대본을 완성했는데 농민의 편에 서서 예술로 투쟁하는 주인공 화가는 그뤼네발트이기도 하고 힌데미트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젠하임 제단화 중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부분 ⓒ Wikimedia


결국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음악가는 나치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고국을 떠나야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비올리스트로도 활동한 영향력 있는 작곡가였던 힌데미트는 그렇게 현실적 상황을 직시한 실천적인 음악가로 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연을 접하기 어려운 작곡가이지만 올해는 힌데미트 탄생 130주년으로 최근 교향악축제 등에서 그의 작품들이 공연되기도 했다.

반복되는 21세기 혼돈의 선상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니 미래의 어떤 예술가는 힌데미트의 음악 속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옭아맨 시대를 뚫고 나온 잔향 짙은 예술가의 목소리는 작품과 함께 영원히 유효한 것임을.



▶▶필자 김보라는 성북구립미술관 관장이다. 서울시미술관협의회 회장이며 ICOM 한국위원회와 (재)내셔널트러스트의 이사이고,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진흥정책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경기도미술관에 근무하며 건립 TF 및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국내외 전시기획과 공립미술관 행정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2009년 자치구 최초로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의 학예실장을 거쳐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관장을 맡고 있다. 윤중식·서세옥·송영수 등 지역 원로작가의 소장품을 확보해 문화예술 자산에 대한 연구 기반을 확장했고 예술가의 가옥 보존과 연구를 기반으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개관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박물관 및 미술관 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