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권력이 분산된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대통령이라는 지도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정책의 결정부터 국가 운영의 방향까지 한 사람의 판단이 국민의 삶을 좌우할 정도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홀로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 고립된 생각과 판단은 언제나 오류와 편향의 위험을 내포한다. 큰 일을 도모할수록 다양한 의견과 비판적 시각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 등 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권자에게 해당하는 원칙이다.
신간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는 열린 대화와 끊임 없는 소통이 어떻게 성공적인 개혁을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일종의 정답을 제시한다. 역사 속 인물인 개혁 군주 정조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특별한 군신 관계를 복원한 책은 두 사람의 정책 문답인 ‘책문(策問)’과 ‘대책(對策)’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동양학 및 교육학 관련 논문 150여 편과 100여 권의 책을 펴낸 인문학자인 저자가 복잡하게 얽힌 원문을 쉽게 풀고 재배치해 이해를 돕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정조가 인사·경제·국방·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짚어 대안을 구하고 다산이 깊이 있고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때 두 사람은 ‘지배·피지배’라는 관계를 넘어 군주는 백성을 사랑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신하는 군주에 충성을 다하는 일종의 ‘동반자적 관계’에 다다른다. 다산은 정조의 질문에 때로는 날카롭게 비판하고 때로는 간곡히 호소하며 자신의 군주가 책임감 있는 리더로 거듭나기를 촉구하고 정조는 다산의 쓴소리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생각을 정돈해나간다.
일례로 정조가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펼치는데도 간절한 마음에 비해 성과는 멀다고 한탄하니 다산은 “뜻과 마음이 부지런하고 간절해도 정치 효과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노동력이 넉넉하지 못하고 지리를 개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면서 놀고 먹는 양반들의 실력을 검증해 합격하지 못한 자들은 모조리 병역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력한 정책을 편다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답도 건넨다. 또 정조가 점술가나 무당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느냐는 고민에 빠지자 다산은 “능력 있는 사람이 반드시 높은 신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허황된 말과 술수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오직 준엄한 말씀으로 배격하여 내쳐 끊으시고 몽매한 자들을 활짝 열리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 시대의 문답이지만 오늘날 시사하는 바도 크다. 정조가 “어떻게 해야 온 세상이 풍요롭고 즐거운 지경에 들 수 있겠는가”라고 고민하는 가운데 다산은 “토지 소유를 적절하게 제한하고 빈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다산은 “공정한 정책이 있어야 나라를 위해 일하는 병사나 농부들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풍요는) 오직 임금께서 적극적으로 민생을 살피고 힘써 행하는데 달렸다”고 강조한다. 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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