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통상 협의를 위한 한미 고위급 양자회담에 앞서 한국 조선 업체들과 잇달아 회동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16일 제주에서 특수선 양대 강자인 HD현대·한화오션 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갖고 한미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조선업 부활을 도울 파트너로 지목한 K조선과의 협력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셈이다. 미국의 요청으로 성사된 면담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미국 조선 산업 재건에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참여할 것”이라며 공동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등 구체적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는 “미 조선 산업 재도약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산 제품에 부과를 예고한 25% 상호관세 면제·예외와 25% 철강·자동차 품목관세 철폐를 위한 관세 협상이 본격화한 가운데 미국이 큰 관심을 갖는 조선업 협력은 우리의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워싱턴 ‘2+2 장관급 협의’에서 7월 8일까지 관세 협상을 타결하는 ‘줄라이 패키지’ 목표에 합의하고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이다. 제주에서 열린 통상·산업장관 투트랙 회담에 이어 다음 주에는 미국에서 균형무역, 비관세 조치 등에 대한 본격적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한미 국제차관보의 환율 협상도 시작됐다. 미국이 환율을 협상 의제에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지만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원화 절상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시장에서는 한국 등을 상대로 미국의 ‘제2 플라자 합의’ 가능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폭탄과 환율 부담으로 우리 수출이 이중고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매력적인 협상 카드를 내밀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도움을 요청한 조선업을 비롯해 에너지·원자력 등 미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산업 협력 방안을 협상의 중요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제조업 재건의 핵심 파트너로서 한국의 역할을 부각하는 ‘윈윈’ 협상 전략으로 관세·환율 압박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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