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해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과 연구개발(R&D) 사업을 분리한 것은 바이오 사업을 ‘제2의 반도체’로 키우기 위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승부수다. 이 회장은 최근 데이터센터 수요가 높아지는 데 발맞춰 2조 4000억 원에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인 독일 플랙트그룹을 인수하는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반도체 성공 DNA를 바이오 신화로 이어가자”며 꾸준히 바이오 사업의 성장을 강조해왔다.
◇삼성바이오에피스, M&A·기술협업 통해 레벨업=이번 분할로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블록버스터 신약 등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 기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편입해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통한 안정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 인프라 구축과 국내외 바이오텍 투자, 오픈 이노베이션, 인수합병(M&A)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바이오 관련 신사업에 필요한 자회사도 신설한다. 김형준 삼성바이오에피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2일 열린 온라인 설명회에서 “신설될 바이오 관련 신사업 자회사는 바이오 기술 플랫폼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바이오산업은 연간 10%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바이오시밀러 산업 비중은 그중 3%에 그칠 것으로 보여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해충돌 문제로 속도를 내지 못했던 신약 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 항체·약물접합체(ADC), 유전자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한 상태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CDMO 회사가 자체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모자회사 구조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장에 다소 걸림돌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고객사 전략 노출 우려 불식…수주 박차=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순수 CDMO 회사로 거듭나며 전문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분할함으로써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생산을 맡기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기술이나 전략 노출 우려를 불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CFO는 “2022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인수할 당시에는 바이오시밀러 사업 성장 초기 단계라 고객사들의 우려가 크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최근 사업 성장으로 고객사의 이해 상충 우려가 증가했고 수주 경쟁력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게 돼 분할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분할을 계기로 CDMO 역량 강화를 위해 ADC, 아데노연관바이러스(AAV), 사전충전형 주사기(PFS) 등 신사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2032년까지 인천 송도에 6~8공장을 증설해 132만 4000ℓ의 생산능력 ‘초격차’를 이어간다. 유 CFO는 “해외에 바이오 및 무기화합물 CDMO 공장 설립을 위해 브라운필드(현지 공장을 인수하는 방식), 그린필드(땅을 매입해 공장을 신설하는 방식) 또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세계 1위 CDMO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거래하지 않는 상위 20개 빅파마 중 3곳이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며 “이번 분할로 고객사들이 이해 상충이 해소됐다고 판단하면 빅파마 추가 수주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에 사측 “관련 없다” 선 그어=증권가에서는 이번 분할로 삼성그룹 차원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가 기준 현물출자 후 삼성물산(028260)과 삼성전자의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율은 각각 53.2%, 38.6%로 기존(43.1%, 31.2%)보다 늘고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74.3%를 보유하게 된다”며 “이후 삼성물산이 중간지주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매각하면 약 29조 6000억 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고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원 역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일부를 외부에 매각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저평가된 지주회사 주가를 활용해 삼성전자로부터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전략 또한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유 CFO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주주가치 극대화와 지속 성장을 위한 지주사”라며 “인적 분할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나스닥 상장론도 불거졌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국거래소에 향후 5년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상장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할로 양 사의 성장성, 수익성, 전략적 가치 등을 더욱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됐다”며 “하나의 기업 구조 내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사업의 가치를 부각시켜 기업 및 주주 가치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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