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15일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만약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암 조직검사가 100% 일치한다는 결과를 듣는 순간 '이제 살았다' 싶더라고요.”
23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A씨(59·남)는 “치료 시작 2주만에 배달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현재 건강 상태를 전했다. 배우자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던 A씨는 2년 전 국가암검진으로 받은 내시경 검사에서 위암이 발견됐다. 그해 5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8번의 항암치료를 마쳤다. 갑작스러운 암 진단 앞에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아가며 꼬박 6개월을 치료에 매달렸다는 A씨는 “작년 11월 정기검진에서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견을 들으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한 달여 만에 상황은 급반전됐다. 음식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탔는데, 심상치 않은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단순 근육통으로 여겨 동네 정형외과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아 복용해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이 웬만해서는 아픔을 잘 참는 스타일인데 잘 때 침대 패드가 다 젖을 정도로 식은 땀을 흘리며 끙끙 앓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며 “안되겠다 싶어 식당 문을 닫고 응급실로 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검사 결과 혈액 내 뼈 파괴가 활발해질 때 높아지는 알칼리 인산분해효소(ALP·Alkaline Phosphatase)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10배 가까이 뛰어있었고,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뼈 전이’로 확진됐다.
◇위암, 한국인에 많이 발생… 진행될수록 생존율 급감
위암은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 중 하나다. 작년 말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위암 신규 환자는 2만9487명으로 전체 암 발생자의 10.5%를 차지했다. 전년대비 신규 진단자가 264명 줄어들고 암 발생순위는 기존 4위에서 한 계단 내려왔지만 여전히 10대 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위암은 조기 발견 시 5년 상대생존율이 97.4%에 달한다. 위암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고 위와 그 주위의 국소 림프절에 국한되어 있으면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기가 진행될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암이 발생한 장기 외 주위 장기나 인접 조직 또는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 진행’ 병기의 5년 생존율은 62.0%, 암이 발생한 장기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부위에 전이된 ‘원격 전이’의 경우 7.5%에 불과하다. 높은 사망률로 악명 높은 췌장암(2.6%)이나 간암(3.5%)·담도암(4.1%)과 비슷한 수준이다.
◇클라우딘18.2 타깃 표적항암제 첫 등장…“2주만에 일상 되찾아”
전이성 위암 환자에게서 뼈 전이가 발생하면 예후가 좋지 않은 편이다. 망연자실하며 앉아있는 A씨에게 강민수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신약 임상시험 참여를 권했다. 조직검사를 통해 ‘클라우딘(CLDN)18.2’ 단백질의 과발현이 확인되면 임상 막바지에 접어든 표적항암제 ‘빌로이(성분명 졸베툭시맙)’ 병용요법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름 뒤 조직검사 결과 인간표피 성장인자 수용체 2형(HER2) 음성에 PD-L1 발현율은 낮지만 CLDN18.2 양성 100%로 나왔고 A씨는 피험자 등록 종료 직전에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었다. 2~3차 투약 때부터 허리 통증이 확연히 줄어 더 이상 진통제를 찾지 않는 것은 물론, 생업에 복귀해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7회차 투약을 마친 지금은 항암 치료 당일에만 항구토제를 복용하면 될 정도로 울렁증도 없다. 2000 이상이었던 ALP 수치는 투약을 시작한 뒤로 눈에 띄게 떨어져 300대가 됐다. A씨는 ‘동정적 사용 제도(EAP·Expanded Access Program)’의 혜택을 통해 빌로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정식 발매된 후에도 약값을 면제받고 있다. EAP는 제약사가 치료 수단이 없는 환자들을 위해 시판 전 무상으로 치료제를 공급하는 제도다. A씨는 “작년 12월에 아내와 함께 병원에 오면서 ‘우리가 다시 새싹을 볼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난다”며 “저처럼 간절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텐데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루빨리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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