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전 세계 주요 상장사들의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하며 4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실적 개선을 견인했고,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하도 힘을 보탰다. 다만 4월 이후 본격화된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가 향후 기업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2일까지 금융정보업체 퀵·팩트셋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 세계 상장기업 약 2만5000개사의 1분기 실적을 집계한 결과, 시가총액 기준 9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들의 순이익이 약 1조1900억 달러(약 1643조원)를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4분기 연속 증익(增益)은 코로나19 팬데믹 회복기인 2022년 1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AI 수요에 힘입어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와 정보통신 업종이 큰 폭의 이익 증가를 기록했다. 전기전자 업종의 순익은 38% 늘었으며,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순익이 대만 달러 기준으로 60%나 증가해 1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TSMC의 웨이저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의 관세 조치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고객들의 주문 흐름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보통신 업종의 이익도 26% 늘었다.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주력인 클라우드 사업 부문 호조에 힘입어 18%의 이익 증가를 기록했다. 사티아 나델라 CEO는 “클라우드와 AI는 모든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며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클라우드 사업이 견조함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자동차와 소재·에너지 업종은 부진했다. 자동차 업종은 순익이 40% 급감했다.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독일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소재·에너지 업종도 8%의 이익 감소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원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영국 셸, 미국 셰브론 등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됐다. 닛케이는 “이들 업종의 부진을 AI 중심 업종의 견조한 실적이 상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분기 실적의 최대 관건은 미국 관세다. 전망치가 존재하는 4900개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2분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전자와 정보통신 업종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과 각국 간 관세 협상이 계속되고 있어 실적 상승세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은 관세 관련 비용 증가로 2분기 실적이 둔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수요 둔화 우려로 소비 관련 기업들이 실적 전망을 낮추거나 철회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펩시코는 올해 주당순이익(EPS) 성장률 전망을 기존 ‘한 자릿수 중반’에서 ‘대체로 보합’으로 낮췄고, 아메리칸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도 여행 수요 부진을 반영해 연간 실적 전망을 철회했다.
프랑스 BNP파리바 자산운용의 다니엘 모리스 수석 시장전략가는 “미국의 AI 투자 확대로 관련 종목의 우위는 지속될 것으로 보지만, 관세의 영향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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