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시대가 다시 열립니다. 대통령실의 공식 명칭 역시 오는 29일부터 ‘청와대’로 되돌아갑니다. 이로써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마지막 대통령’이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유일하게 청와대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록됩니다.
윤석열, 유일하게 청와대 거치지 않은 대통령
대통령실 대변인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실에 걸린 봉황기가 29일 오전 0시를 기해 내려지고, 이와 동시에 청와대에 봉황기가 게양될 예정으로 이를 기점으로 대통령실의 명칭도 청와대로 바뀝니다. 봉황기는 대한민국 국가수반의 상징으로, 대통령의 주 집무실이 있는 곳에 상시 게양됩니다. 즉 29일 오전 0시 기점의 청와대 봉황기 게양은 3년 7개월 굴곡진 용산 대통령실 시대의 종언을 뜻합니다.
윤석열 정권은 당선인 신분시절 부터 청와대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잊어버린 지 오래지만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 모두 청와대에 하루도 있기 싫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문 전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하루 전날 청와대를 떠나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식 날인 5월10일 오전 0시부터 청와대를 완전 개방하겠다고 대선 공약에도 없던 공약 아닌 공약을 당선인 신분으로 밝혀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용산 대통령실과 집무실 마련에 100일의 시간을 쏟아 부은 꼴입니다.
결과적으로 10일 오전0시 전에 청와대를 비워줘야 하는 문 전 대통령은 임기완료 하루 전날 청와대를 떠나 서울 인근에서 머물다가 윤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 후 경남 양산 사저로 이동합니다. 윤 정권이 전임자에 대한 예우가 있을 리도 없었고, 특히 문재인 청와대는 신·구 정권 간 다툼과 갈등으로 비춰질 소지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당시 신정부에 협조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신·구 정권 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걸 부담스러워했던 일화는 또 있습니다. 당선인 신분으로 한 달도 안돼 청와대 이전 계획 발표에 문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에 당시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인 박수현 의원이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었습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한 박 의원은 '청와대는 최근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한 비공개 여론조사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찬반 의견이 비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는 보도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靑, 용산 이전 “그게 가능한가” 격노 아닌 허탈
특히 그는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것은 더욱 사실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어 "안보 상황의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정부 교체기가 겹쳐, 자칫 자그마한 (안보) 공백이라도 온다면 국가 보위,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 지장을 초래할지 모르니 그런 것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원론적 다짐을 국민 앞에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을 국민 곁으로 가까이 가겠다는 문 대통령도 했던 약속이 잘 실현되길 바라고 협조하겠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쳐버리기 쉬운 이 말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문 전 대통령도 광화문 대통령을 자임하며 집무실 이전을 숙원으로 여겼습니다. 국민과 더 소통하고 퇴근길 직장인들과 호프 한잔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경호처, 행안부, 국방부 어느 곳도 반기 질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사석에서 만난 당시 청와대 참모는 윤석열 당선인의 청와대 용산 이전이 실현되자 문 전 대통령이 “저게 되는 겁니까”라며 격노가 아니라 허탈해했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 靑에 가둬 둔 안보 논리
청와대 공간 문제 아닌 사람 문제
청와대 공간 문제 아닌 사람 문제
늘 청와대는 국민과 대통령을 단절시키고 소통의 벽을 쌓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경호처와 국방 등의 관련 부처, 기관 등이 대통령을 청와대에 가두어 둘 수 있었던 것은 ‘분단 상황에서 대통령의 안위’가 중요하다는 식의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용산 대통령실이 도청 문제에 휘말리고, 북한 드론이 대통령실 잔디밭에 떨어지는데 대한민국 현역 국방부와 장성들, 고위공직자 누구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3년 7개월 동안 용산의 도시계획도 무력화됐습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인해 늦어진 ‘미래 도시 서울’의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보수 정권의 청와대 이전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수도 이전 구상이 조선시대 경국대전까지 끌어와 관습헌법 논리로 가로 막혔던 전례를 떠올리면, 대한민국 기득권 구조가 보수 정권의 선택에는 관대하게 작동해 왔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입니다.
집무실도 광화문 정부청사에 설치 못한 文
용산 이전 후 관저 없어 살던 곳 통근 한 尹
용산 이전 후 관저 없어 살던 곳 통근 한 尹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옮기자는 게 아니라 일하는 집무실 즉 사무실 하나를 광화문 서울청사에 두겠다 던 것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아파트가 즐비한 용산에 청와대를 옮겨 놓고 정작 관사도 없어 수 개월을 민간인 시절 살던 아파트에서 출퇴근을 했습니다.
노무현 1호 지시 ‘북악산 개방’…“안된다”
尹당선되자 완전 개방…북악산 시민품
尹당선되자 완전 개방…북악산 시민품
비슷한 사례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시절 문화재청장을 맡았던 유홍준 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성곽을 순례한다는 의미의 순성(巡城)문화를 되살리려 했습니다. 한양도성의 하이라인 북악산에 청와대가 있는 탓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에 노 전 대통령이 때마침 지시를 내려 북악산 개방을 추진하려 했지만 북악산 완전 개방은 20년 가까이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집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을 유 관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편2>에서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 맨 처음 지시한 것이 북악산 개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경호실이 이건 경호실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국방부 장관을 불러 지시했더니 국방부도 자기 일이 아니랍니다. 행정자치부도 아니고 국정원도 아니랍니다. 북악산에 철망을 치고 막은 사람은 있는데 걷어낼 사람은 없는 겁니다. ”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2. p62>
용산 이전 TF부팀장 김용현
국방장관으로 비상계엄 주도
국방장관으로 비상계엄 주도
청와대가 다시 제 기능을 찾는 가운데 3년 7개월 전 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 용산 이전을 두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군인들이 많은 용산에 대통령실 청사를 설치해서 총 든 무장한 군인들을 국회며 선관위에 보냈을까요. 스스로 밝힌 ‘공간이 의식을 지배’해버린 셈입니다.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시킨 TF부팀장은 2024년 12월 3일의 또 다른 주역 김용현 전 국방장관입니다. 김용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옆에 두었다면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을 저지를 확률은 낮아졌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조선조 백성을 살린 정조를 말하면서도 국난의 위기로 빠트린 선조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누구보다 사람과 국정 운영의 방식에 따른 결과를 잘 알고 있는 대통령입니다. 다시 청와대가 국정의 중심으로 도약합니다. 그 안에서 이 대통령과 참모들이 그동안 유독 민주당 대통령들의 발목을 잡아온 안보 논리를 극복하고 사람과 방식으로 공간을 지배하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joist1894@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