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하 농상)이 일본의 ‘쌀 부족 현상’ 해결을 위해 취임한 후, 연일 파격적인 정책을 쏟아내며 자민당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취임 첫날부터 정부 비축미를 수의계약으로 방출하는 등 ‘속도전’을 펼치는 고이즈미 농상과 사전 협의를 건너뛰고 있다며 ‘독단적 결정’을 지적하는 당내 농림정책 담당 의원들, 일명 ‘농림족’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이다.
2일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노무라 데쓰로 전 농상은 지난달 31일 가고시마현에서 열린 당 모임에 참석해 고이즈미 농상의 행보에 쓴소리를 날렸다. 비축미 수의계약 방출을 당 농림부회와 사전 협의 없이 결정한 것을 문제 삼으며 “자기 혼자 결정하고, 자기 혼자 발표한다. 룰을 생각하라”고 비판한 것이다. 일본의 쌀 유통은 그동안 지역 농협을 통해 집하된 쌀이 전국 농업협동조합연합회(JA전농)를 거쳐 도매상과 소매업체에 이르는 구조였다. 고이즈미 농상은 유통 과정마다 발생하는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비축미를 JA를 거치지 않고 대형 소매업체와 주요 도매업체에 직접 판매하도록 했다. 일본 농업 유통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쥔 JA에 대한 사실상의 정면 도전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노무라 전 농상은 고이즈미 농상의 부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우정민영화를 추진했던 것을 언급하며 “아버지를 닮아서 정부 관료들이 곤란해한다”고도 꼬집었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에서 농상을 지낸 노무라 의원은 JA 출신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농상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1일 도내에서 기자단과 만나 “하나하나를 당에 협의하고 있으면 누가 장관이 돼도 속도감 있는 대담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취임 후 10일 만에 5㎏ 2000엔대 비축미가 매장에 진열된 성과를 내세우며 “지금은 긴급 사태인데, ‘충분히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만 하면 이런 결과는 낼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농상은 쌀 가격 인하가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정부 비축미를 “무제한으로 내놓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외국산 쌀 수입 확대라는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본 농협(JA) 등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농업단체와의 관계를 중시해 신중한 자세를 취해 온 당내 농림정책 담당 의원들과는 다른 행보다. 이와 관련해 고이즈미 농상은 당으로부터 농상 제안을 받을 때 간사장에 “이 국면에서 중요한 것은 조직과 단체에 눈치 보지 않는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쌀 대란 대응은 고이즈미 농상의 향후 정치적 입지에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그가 주장하는 개혁 방안에는 쌀 증산을 촉진하는 제도로의 전환도 포함돼 있다. 농림수산성은 2018년 쌀 생산량을 조정하는 ‘감반정책’을 폐지했지만, 지금도 주식용 쌀에서 사료용 쌀이나 밀, 대두 등으로의 전작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사실상의 생산 억제책이 남아 있다. 고이즈미 농상은 아베 정권 당시 자민당 농림부회장을 맡아 개혁을 시도했지만, 농림족과 농림수산성, JA의 강한 반발로 인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포스트 이시바’로 꼽히는 고이즈미 농상의 이번 개혁 시도는 정치적 리더십과 당내 설득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쌀값 급등으로 누적된 민심의 흐름까지 바꿀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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