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5·6호기 신설 사업을 최종 수주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 건설 사업을 따낸 지 16년 만에 첫 해외 수출이다. 원전 산업을 선도해 온 유럽 시장에 처음 진출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수원은 5일 체코전력공사(CEZ) 산하 원전 발전사인 두코바니Ⅱ(EDUⅡ)와 전날 본계약 체결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같은날 체코 최고행정법원이 계약 금지 가처분 결정을 무효화한지 몇 시간만에 전자 서명 방식으로 계약 절차를 끝낸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달 체코 정부가 국무회의를 열어 즉각 계약이 가능하도록 사전 절차를 모두 마무리해 뒀다”며 “법적 제한이 사라지자 곧바로 후속 절차에 돌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코바니 원전 건설 계약이 체결됐다”고 알리며 “이번 계약은 단순한 문서 서명이 아니라 체코의 에너지 자립과 국가 안보 확보를 위한 매우 중요한 이정표”라고 치켜세웠다.
통상 수십조 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는 양국 정상이 임석하는 서명식을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최종 계약에 서두른 것은 지난해 7월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본계약에 서명하기까지 9개월간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달 7일에는 최종 계약을 위해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물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이 체코 땅을 밟고도 계약을 못 하는 사태를 겪었다. 프랑스 전력청(EDF)이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신청한 계약 금지 가처분이 최종 계약 하루 전날 인용되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프랑스는 두코바니 원전 사업 수주전에서 탈락한 직후부터 체코 정부와 한수원을 괴롭혔다. 입찰 절차에 하자가 있는 데다 한수원이 무리하게 낮은 입찰가를 써낼 수 있던 것은 정부 보조금 덕분이라며 체코 경쟁보호청(UOHS)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다. UOHS는 해당 진정을 기각했지만 EDF는 지방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하며 쟁송을 이어갔다. EDF와 함께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도 한수원의 사업 수주에 어깃장을 놨지만 올해 초 한국과 지식재산권 관련 별도 합의를 하면서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최종 계약까지 성사된 덕에 K원전은 유럽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번 사업은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두코바니 지역에 1000MW급 원전 2기를 새로 짓는 사업이다. 러시아산인 두코바니 1~4호기와 달리 5·6호기는 한국형 원전인 APR-1000을 도입한다. 건설 및 시운전을 마무리한 뒤 운영권을 넘겨주는 ‘턴 키’ 방식으로 계약된 이번 사업의 총 비용은 4070억 코루나(약 25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체코 정부가 추후 추진할 테믈린 원전 3·4호기 신설 사업 수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체코는 두코바니 원전 신설 사업 최종 사업자에게 테믈린 원전 신설 사업 우선협상권을 주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테믈린 원전 신설 사업까지 따낼 경우 ‘팀 코리아’는 유럽 지역에서 총 4기의 원자로를 건설하게 된다. 사업 규모 역시 약 50조 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진행 중인 원전 건설 사업까지 고려하면 4~6기의 신규 원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한동안 먹거리 걱정이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즉시 두코바니 지역에 현장 사무소를 개소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이후 전담 조직을 개설해 EDUⅡ와 약 200여 차례 분야별 협상을 진행한 결과 3월께 계약 내용이 완성됐다”며 “곧 EDUⅡ와 착수 회의를 개최한 뒤 현장 사무소부터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는 한전기술·한전KPS·한전연료와 같은 한국전력공사 자회사뿐 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 등 국내 원전 생태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들을 위해 참여 자격과 품질 기준 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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