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성장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를 선언한 가운데 예산 편성 기능의 주도권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예산 편성을 포함한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대통령이 예산권마저 장악할 경우 정치와 행정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반론이 함께 나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예산 편성 권한을 강화하더라도 최소한의 견제 기능은 남겨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권의 초대 대통령실 재정기획관을 지낸 박종규 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현 명예위원)은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고 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기획재정부의 역할이지만 재정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통령에게 직접적인 재정운용권을 주고 책임을 묻는 게 상식적”이라고 말했다. 재정기획관은 대통령실에서 정부 전체 재정에 대한 의견을 취합하는 자리로 윤석열 대통령 때 폐지됐다가 이재명 정부 들어 부활하면서 직급도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정기획관이 도입과 폐지를 반복하는 배경에는 대통령실 ‘어공(민간인 출신 공무원)’과 기재부 ‘늘공(직업관료)’ 간 주도권 다툼이 자리 잡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교수 출신 이정우 전 정책실장과 관료 출신 김진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사사건건 부딪혔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수시로 엇박자를 냈다. 김동연 전 부총리에 이은 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완강히 저항한 일화도 있다. 박 전 원장은 재정기획관의 부활을 비롯한 예산 편성 기능 조정 논의가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했다고 봤다. 그는 “청와대가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관료들이 자꾸 안 된다고만 해 답답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역시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를 실천하고 예산을 통한 정책조정 기능을 대통령실에서 수행하는 게 이치에 맞는다”고 공감했다. 박 교수는 대통령실이 비대화된다는 비판에 대해 “당연히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실이 권한도 행사하고 책임도 져야 한다”며 “대통령의 책무성과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실장 산하 재정기획관을 수석급으로 변경해 중장기 재정정책과 예산 편성을 총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 “재정예산수석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미국 관리예산국(OBM)과 같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어젠다 외 예산에 대해서는 각 정부 부처의 자율성이 더 커질 여지도 있다. 박 교수는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에 두는 식으로는 정책실장, 기획예산처장, 재경부 장관 3명이서 폭탄 돌리기와 권한 다툼만 벌일 것”이라며 “이럴 경우 안 하느니만 못한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통령실이 예산 편성 기능을 가져가면 비효율성만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기재부의 권한이 워낙 강해 예산 파트를 분리시키자는 생각을 하는 걸로 보인다”며 “그 예산 부분의 인력을 전부 대통령실로 가져간다는 건 비현실적이고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국가 예산의 지나친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5년 임기 내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실 어공들과 달리 늘공들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더 무게중심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부처를 쪼개면서 승진 기회가 늘어나 더 좋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는데, 관료로서 헌신한 과거를 부정하는 말이라 업무 의욕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인들은 재정을 풀려고 하고 관료들은 재정 상황을 살펴본 뒤 신중하려고 하는 ‘균형’ 속에서 최적의 정책이 나온다”며 “이곳이 기재부의 나라냐는 말처럼 관료들이 마음에 안 드니 부처를 분리하겠다는 건 균형을 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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