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재지정으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 전역 주택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서울 지역 집합건물 증여 건수가 1월 이후 4개월 연속 증가했다. 토허구역 재지정에 거래가 어려워진데다가 향후 주택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하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9일 법원등기정보광장의 소유권이전등기(증여) 신청 부동산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419건이었던 집합건물 증여 신청 건수는 강남권 토허구역 해제 기대감에 집값 상승 움직임이 보이던 2월에 514건으로 100건가량 늘어났다. 이후 강남 3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 단지가 토허구역으로 재지정 된 3월에는 649건까지 증가했다. 4월에는 671건으로 늘었고 지난달에도 683건으로 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5월(707건) 이후 1년 만에 최다 건수다. 집합 건물은 아파트와 연립·다세대 주택 등을 포함한다.
증여 건수 증가 흐름은 같은 기간 서울 지역 주택 가격이 급등하면서 거래량이 감소한 것과 대조된다.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8주 연속 상승했다. 이달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대비 0.19% 올랐다. 강남은 전주 대비 0.40%, 서초는 0.42%, 송파는 0.50% 급등했으며 강남 3구뿐만 아니라 서울 25개 자치구 아파트 매매가격이 모두 상승했다.
거래량은 줄었다. 3월 9529건이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월 5032건으로 반 토막 났다. 아직 신고 기한이 남았지만 5월 거래량도 5000건대에 머물러 있다. 연립·다세대 주택 거래량도 3월 3129건 에서 4월 2521건으로 감소했고 이날 기준 지난달 거래량도 2165건에 그쳤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증여세 부담이 커지는 만큼 증여 건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정부의 집값 안정화 정책으로 오히려 주택 시장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소희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부동산전문위원은 “증여세 부담으로 인해 현금을 증여해도 현재 증여자가 보유하고 있는 수준의 자산을 매입하려면 추가적인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차라리 주택 증여를 선택한다”며 “특히 강남권 주택은 양극화 심화로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고 현금보다 자산을 증여하는 것이 미래가치 방어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고가 주택 소유주와 다주택자를 겨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이 ‘똘똘한 한 채’로 몰리게 하면서 ‘부의 대물림’이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남 3구 3개 지역의 집합건물 증여 비중이 전체의 27.5%에 달했다. 고가 주택이 몰린 강남 3구에서 증여 거래가 많았던 것이다. 지난달 강남구 집합건물 증여 건수는 74건으로 서울 지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초가 64건으로 뒤를 이었고 송파구가 50건으로 3위였다.
증여세 과세 기준 완화 기대감이 낮아진 것도 집합건물 증여 증가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를 이유로 상속·증여세 기준 개편을 거부해 왔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생각이 크고, 그에 따라 증여세 부담은 더 커진다”며 “향후 증여세를 낮추는 정책이 시행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서둘러 자산을 물려주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부동산 정책이 시장 친화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예상과 ‘똘똘한 한 채’ 열풍이 맞물리며 서울 집은 파는 것 아니라는 인식만 더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재산세와 보유세 등 보유세 과세기준일이 6월 1일이다보니 다주택자의 경우 그 전에 주택을 증여해 처분하려는 수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증여세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계속 주택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에 하루라도 빨리 넘겨주는 게 이득이라고 계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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