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내용의 ‘갈등 관리 법안’이 수십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우리 사회의 갈등 비용은 지난 30여 년 동안 2600조 원을 웃돌면서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제17~22대 국회에서 발의된 갈등 관리 관련 법안은 정부안 1건을 포함해 총 15건이었다. 공공기관의 갈등 관리에 관한 법률안, 공공 정책 갈등 예방 및 해결을 위한 기본 법안, 갈등 관리 기본 법안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발의된 관련 법안들은 △갈등 관리 종합 시책 수립 의무화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설치 △갈등조정협의회 구성 및 운영 △공론화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 등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제22대 국회를 제외한 매 국회에서 발의된 갈등 관리 관련 법안들이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는 점이다. 입법 시도가 번번이 좌초된 이유는 ‘무관심’이다. 제21대 국회에서 ‘공공 갈등 예방 및 해결을 위한 기본 법안’을 발의한 이명수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들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해 논의에 진척이 없었다”며 “현실적으로 갈등이 늘면 늘지 줄지는 않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간섭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20대 국회에서 ‘갈등 관리 법안’을 발의한 김해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우리 사회의 갈등이 워낙 심각해 중요 법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야 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발의된 갈등 관리 관련 법안들은 현행 대통령령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의 세부 내용을 조정하고 이를 법제화하려는 시도다. 대통령령 갈등 관리 규정은 중앙 행정기관 등에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아 실효성 문제가 제기돼왔다. 한국행정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은재호 KAIST 교수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생기는 지체보다 갈등으로 인한 지연이 훨씬 길다”며 “제3의 전문가 집단이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해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문수 민주당 의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시스템을 제도화해 강력한 갈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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