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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방·로맨스스캠 '계좌정지' 안돼…사기 진화하는데 法개정 하세월 [사기에 멍든 대한민국]

<5회·끝> 法적 한계에 근절·수사 난항

전기통신금융사기 대상 확대 내용

개정안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

신종 사기는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

美·日 등과 달리 플리바겐은 미도입

증인보호 예산 4억원대…감소 추세

그래픽=구선아 기자




30대 김 모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투자 강의를 접하고 비상장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3000만 원을 잃었다. 전문 투자자 등을 사칭한 전형적인 리딩방 사기였다. 그는 혹시 모를 추가 자금 인출을 걱정해 경찰서에 계좌 정지를 요청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기관 사칭이나 대출 권유 등 보이스피싱이 아닌 투자 사기라 계좌를 정지할 수 없다는 사유였다.

김 씨는 “경찰에서 리딩방 투자 사기의 경우 계좌 동결은 물론 추후 피해금 환급도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인터넷 게시판에 ‘보이스피싱으로 허위 신고하면 계좌 동결이 가능하다’는 글을 봤지만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시스템이 보이스피싱에 국한돼 있어 리딩방·로맨스스캠 등 급증하는 신종 사기 피해 방지에 무력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진화하고 있는 사기 범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사법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에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환급법) 개정안이 10건 발의됐지만 단 1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계류 중인 이들 법안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는 리딩방·로맨스스캠 등 신종 사기는 물론 인터넷 도박까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상자산사업자도 금융회사와 마찬가지로 통신사기환급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는 만큼 가상자산회사도 지급 정지 등의 대상에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다.



통신사기환급법에 따르면 전기통신금융사기란 ‘전기 통신을 이용해 타인을 기망·공갈함으로써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계좌 정지를 통해 보이스피싱에 따른 자금 송금·이체, 출금 등 행위를 제한하지만 재화 공급이나 용역 제공을 가장한 신종 사기 행위는 제외돼 있다. 또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 행위가 크게 늘고 있지만 통신사기환급법 적용 대상은 여전히 금융회사로 한정돼 있다. 보이스피싱에 맞춰 2011년 제정·시행된 통신사기환급법이 진화하는 사기 범죄를 따라 제때 개정되지 못하면서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홍푸른 디센트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사기 범행이 의심될 경우 보이스피싱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계좌 등을 신속하게 지급 정지하는 등 피해금 회수와 관련된 법적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 예방과 함께 이른바 사기 범죄 ‘윗선’ 체포 등 수사 효율을 위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책 등을 조기에 체포해야 피해자가 느는 것을 방지하고 피해금 환수까지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플리바게닝은 형사 사건에서 본인 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의 죄를 증언해주는 자에게 형량을 감면해주는 제도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이다. 국내의 경우 시세조종, 부정거래, 미공개 정보 이용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도(자진 신고자 감면 제도) 역시 운영 중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사기 피해를 줄이고 피해 금액을 조기에 환수하기 위해서라도 사기 범죄에 플리바게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는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자금 수거책 등 가장 약한 연결고리에 대해 플리바게닝을 제시해 주요 증언이나 증거를 확보한다”며 “이를 통해 윗선 수사에 나서면서 피해 자금도 빠르게 동결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플리바게닝과 함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해야 수사를 위한 확실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할 수 있지만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도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범죄신고자법)에 따라 범죄 신고자에 대해 신병 경호, 보호, 법정 동행 등은 물론 이전비·구조금도 제공되는 제도가 있다. 대상에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비롯해 범죄단체, 상습 사기도 포함돼 있지만 예산은 한 해 4억 원대에 그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신고자 보호 등 예산은 4억 1600만 원으로 2020년(5억 700만 원)보다 오히려 1억 원가량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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