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범행 수법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1990년대 연쇄살인 조직 ‘지존파’ 검거를 주도한 형사 고병천(사진)씨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고인은 194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76년 순경으로 임관해 경기 수원경찰서와 서울 서초경찰서 등을 거치며 베테랑 형사로 인정받았다. 서초경찰서 강력반장 시절 고인이 해결한 대표적인 사건은 1994년 부유층을 겨냥해 납치살인 행각을 벌인 지존파 사건이다. 두목 김기환을 중심으로 조직된 지존파는 1993년부터 2년간 5명을 연쇄 살인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감금하고 시신을 소각할 수 있는 ‘살인 공장’을 짓고 담력을 키운다며 인육까지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들 중 검거 직전 합류한 이경숙을 제외한 6명에 대해서는 1995년 모두 사형이 집행됐다.
조직에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고인이다. 일당은 스스로를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마스칸’으로 불렀지만 이런 뜻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지존파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강력반을 이끌며 치밀한 작전으로 지존파 검거에 공을 세웠다. 검거 이후에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서초경찰서를 직접 찾아 고인을 격려했다. 고인은 이외에도 ‘온보현 택시 납치 살인 사건’ ‘앙드레김 권총 협박 사건’ 등 강력 사건들을 처리했다.
이후 2013년 지존파 사건을 주제로 논문을 써 광운대에서 범죄학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30년 넘게 겪은 사건들을 회고하며 책도 펴냈다. 2009년 은퇴 당시 디스크 수술을 받기도 한 고인은 지난해에는 뇌졸중까지 앓았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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