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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자랑스러운 우리 박물관인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는 사업을 서두르던 2004년 가을의 일이다. 세계 박물관계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총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이 개관한 이래 이민족의 지배와 분단·전쟁을 겪는 중에도 어렵사리 발전을 모색해온 한국 박물관계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세계 총회를 유치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세계의 박물관인들은 한국의 박물관에 주목했고 한국의 박물관인들은 세계적 표준의 박물관 운영을 지향하게 됐다.

2004년 당시 400여 개에 지나지 않던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20년이 지난 2024년 1204개로 3배 증가했다. 양적인 증가에 더해 더욱 반가운 일은 박물관 운영의 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이다. 수집과 연구·전시라는 기본 기능을 수행하는 일조차 힘겨워하던 한계를 넘어서서 박물관 교육, 어린이박물관, 전시 디자인, 보존과학 등 다양한 전문 분야를 두루 고려하며 체계적인 박물관 운영을 추구해가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 1~2명의 인력으로 감당하거나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던 분야들이 이제 각각 부서 단위의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과실은 바로 시민들의 것이다. 2003년 한국 박물관으로서는 처음 전문적인 부속 어린이박물관을 설치한 국립민속박물관을 시작으로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이 신설됐고 이후 공공 박물관들은 부속 어린이박물관을 설치하는 것을 사실상 필수 사항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세기에 존재조차 미미했던 박물관 교육 인력은 꾸준히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이용객들이 문화유산과 제대로 소통하며 그 의미와 가치를 학습하고 향유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박물관 디자이너 또한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문화유산과 관람객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다. 오늘날 한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디자이너의 역할 없이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박물관계의 전시 디자인이 현재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 덕분이다. 보존과학 영역의 성장과 기여도 눈부시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소수의 인원만으로 운영되던 보존과학 영역은 이제 박물관 소장품의 분석, 보존, 수복, 환경 관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갖추어 문화유산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처럼 소중한 박물관 전문 인력들을 효과적으로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은 박물관 운영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사안이다. 사람을 키우고 이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반도체를 만드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박물관은 나와 우리, 그리고 이웃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는 공간이다. 여러 시간과 공간 속 인간 사회의 의미 있고 값진 경험의 물질적·비물질적 증거들을 소중히 여기는 박물관은 인간 사회의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축적한다. 그 속에 바로 당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박물관이 주목하는 것은 여러 무늬와 빛깔의 삶이다. 그 수많은 삶이 각자 저마다의 무늬로, 색깔로, 또 다른 삶의 무늬와 색깔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빛나는 것, 그것이 문화일 것이다. 박물관은 여러 시공의 문화를 기억하면서 이 세상을 살다 간 여러 인생을 기리고 지킨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 소중한 사명을 수행하는 이들이 바로 박물관 전문 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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