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미국을 다시 건강하게)여, 편히 잠드소서(R.I.P). 애초에 당신을 제대로 알 기회조차 없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내세운 MAHA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건강을 위해 더 많은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영양과 환경 독소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 메시지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발표한 예산안은 이 정부가 저소득층 영양 지원을 줄이고 환경 독소 사용은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MAHA는 처음부터 국민 건강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전문가들을 ‘딥 스테이트(비밀스럽고 승인되지 않은 권력 네트워크)’라며 보건 관료 조직에서 몰아내는 한편 건강보험 관련 연방 지출을 줄이기 위한 공화당의 광범위한 감축 전략을 MAHA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실제로 공화당의 예산안은 앞으로 10년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조) 예산을 약 8000억 달러 삭감하고 약 1100만 명이 의료보험을 잃게 만들 것이라고 미 의회예산국(CBO)은 추정했다.
케네디와 공화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오히려 미국인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케네디는 의료 시스템의 개입 과잉, 환경문제, 잘못된 식습관 등을 건강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가 펴낸 ‘MAHA 보고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논문들을 인용하며 아동 만성질환 증가의 원인으로 열악한 식단, 환경 독소, 디지털 시대의 생활 습관 변화, 과잉 의료화를 꼽았다. 공화당 의원들도 이 메시지를 지지하고 있다. 의사 출신인 로저 마셜 캔자스주 상원의원은 “환자가 병원을 찾아올 즈음에는 의사로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10~20%에 불과하다”며 “건강한 식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유해 독소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의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영양과 환경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돼 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그 중요한 요소들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식량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트럼프표 예산안’에는 영양 지원 대부분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푸드스탬프(저소득층 식권)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30년간 운영돼온 영양 교육 프로그램인 SNAP-Ed도 폐지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교회·지역단체와 연계해 저소득층이 건강한 식단을 구성하고 운동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다. MAHA의 철학과 가장 부합하는 사업조차 예산 낭비로 간주된 셈이다.
한편 일부 법안은 주정부가 연방 예산 삭감을 메워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가족이 지원을 잃도록 돼 있다. 심지어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될 수도 있다. 케네디가 “학교급식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점에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프로그램 예산을 깎았다. 미 농무장관은 이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산부와 유아에게 식품을 지원하는 50년 전통의 ‘WIC 프로그램’ 역시 예산 삭감 대상에 올랐다. WIC는 영양 부족 위험이 있는 저소득층 여성과 아동에게 과일·채소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민주·공화 양당 모두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트럼프의 새 예산안에 따라 과일·채소 지원이 줄어들 예정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예산 삭감은 MAHA 철학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국가 재정에도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임산부 영양 개선과 아동 건강식품 지원은 의료비와 복지 지출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비슷한 논리는 납 제거와 같은 환경 독소 제거 정책에도 적용된다. 납 배관을 제거하거나 어린이의 신경독소 노출을 줄이는 사업은 모두 높은 ‘투자 대비 효과’를 자랑하는 MAHA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내 납중독대응팀은 전원 해고됐고 환경보호청(EPA)의 독성학 전문가들 또한 축출 대상에 올랐다. 심지어 화학 공장 사고를 예방하거나 조사하는 조직조차 해체 대상이다. EPA는 발전소의 수은·비소·납·발암물질 배출 제한도 완화했다.
케네디는 청문회에서 “우리는 낭비와 비효율·중복을 없애기 위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MAHA의 유일하게 실효성 있는 정책들마저 ‘낭비’로 분류돼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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