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고미술을 거래하는 한 일본인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연락을 해왔다. 문화유산(문화재)을 2023년 경매에서 샀는데 한국 측에서 매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올해 1월 긴급심의위원회를 열었고 이어 3월에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 들어온 것은 4월이다. 국가유산청은 “일본에는 고미술상들만 여는 경매가 있다. 경매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속에 부처의 가르침을 금가루로 옮겨 쓴 고려시대 불교 경전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고려 사경과 조선 불화의 귀환’ 언론 간담회를 열고 최근 일본에서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를 환수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2’는 짙은 청색의 종이(감지)에 금가루를 아교풀에 개어 만든 안료(금니)로 필사한 고려시대 사경(寫經)이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부유층이 불교 교리 전파 뿐 아니라 간절한 바람을 담아 공덕을 쌓는 방편으로 여겨졌다.
쭉 펼쳤을 때 10.9m에 달하며 표지에는 금·은빛으로 그린 연꽃 5송이와 넝쿨무늬가 어우러져 있다. 발원문에는 1334년 ‘정독만달아(鄭禿滿達兒·1290~?)’라는 인물이 부모와 황제 등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경 작업을 완성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정독만달아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로 가 관직에 오른 환관이다.
배영일 공주 마곡사 성보박물관장은 “발원문을 볼 때 현재 코리아나화장박물관이 소장한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권15(보물)’와 내용이 일치해 동질본으로 보인다”면서 “각각 작업한 사경승은 서로 다른데 이번 환수본은 정교한 변상도 표현, 매끄러운 해서체 경문과 우수한 보존 상태로 볼 때 국보급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조선 전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왕도’도 이날 공개됐다. 가로 44㎝, 세로 66㎝ 크기의 비단 위에 저승에서 망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시왕(十王)을 각각 그렸다.
총 10명의 저승 심판관이 모두 담긴 완질은 일본의 한 사찰이 소장한 것과 이 작품 둘밖에 없는 것으로 전한다. 재단은 이 유물이 2023년 8월 일본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해 낙찰에 성공했다. 박은경 동아대 교수는 “조선 전기 시왕도로서 완질을 갖춘 국내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복권기금을 활용해 유물을 환수했다. 두 유물이 일본으로 유출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현지 협력망 등을 강화해 해외에 흩어진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되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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