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에는 안전을 챙기면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식의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안전이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김현중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공공기관장으로서는 드문 노동계(한국노총) 출신이다. 철도 현장에서 노조 활동을 한 김 이사장은 누구보다 현장 위험 요인에 대해 해박하고 산업 안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올 2월 ‘안전한 일터’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으로 그가 낙점된 배경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서울 중구 공단 서울광역본부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근로자 중심의 안전 체계 구축이 사망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며 “이는 기업의 효율적인 경영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이 근로자 중심의 안전 체계를 강조하는 것은 일의 효율만 우선하고 안전 비용을 아끼려다 사고에 이르는 현장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는 “올 3월 쇳물 찌꺼기를 받는 용기인 고열의 포트로 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은 현장을 찾았다”며 “포트가 위아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작업자 앞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는데 ‘자동 난간’ 한 대 가격은 고작 700만 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달 6일 인천시에서 발생한 맨홀 질식 사망 사고도 안전보건공단이 매년 여름철 안전 점검과 캠페인을 통해 경고한 사고 유형 중 하나다. 해당 사고는 근본적으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원인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단계 하도급은 영세한 하청 업체의 부실한 안전관리, 모호한 원청의 사고 책임, 하청 근로자의 안전 요구 미반영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김 이사장은 “사업장별 위험성 평가는 노동자 참여가 중요하지만 정작 하청 노동자의 원청 평가 참여 등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하청 노동자의 현장 목소리를 일터 안전 체계에 빨리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고 위험 예방 기술이 계속 발전하더라도 현장 노동자가 느끼고 개선해야 할 점이 반드시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재해 당사자이기도 한 현장 노동자 중심의 안전 활동과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김 이사장의 인식이다. 그는 “예를 들어 밀폐 공간이라고만 쓰면 일반인들은 ‘창문 열고 환기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현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알리려면 ‘질식 사망 위험 구간’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안전보건공단부터 점검 관행을 현장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공단 직원이 사업장의 위험성 평가를 점검할 때 근로자 참여를 보장하는 곳은 평가 가점을 주도록 했다. 공단에서 실시하는 사업주 대상 안전 교육 역시 달라졌다. 공단 직원이 불시에 현장을 방문해 사업주가 안전 교육을 제대로 적용했는지 근로자에게 묻는 방식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한국노총과 산재 예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단이 한국노총과 안전 협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이사장은 “노조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처럼 일터에 있는 모든 노동자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사망 산재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속도가 붙을 정책은 사법경찰권이 있는 근로감독관 증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도 근로감독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김 이사장은 산재 예방과 교육에 중점을 둔 안전보건공단의 역할 또한 확대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단 직원은 약 2000명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산업 안전 전문인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단은 예방을 위해 사업장을 찾을 뿐만 아니라 사고 현장에서 조사 지원도 하지만 권한이 없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면서 “법·제도적으로 권한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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