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공략에 나섰던 글로벌 브랜드들이 하나 둘 백기 투항에 나서고 있습니다. 자동차, 가전, IT, 유통, 식음료 등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중국에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완전히 철수하는 기업들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고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필승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24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클라우드 부문 자회사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중국 내 인공지능(AI) 연구원을 폐쇄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아마존 측에서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AWS 상하이AI연구원은 2018년 설립됐으나 최근 회사 인력수백명을 감축했으나 미래 전략 방향에 대한 검토 결과 결국 폐지를 결정한건데요.
중국 내 연구개발(R&D) 인력을 축소하는 기업 사례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 8월 IBM은 중국에 남아있던 R&D 인력의 감원을 발표했고, 1000명을 해고했죠. 중국의 기능은 인도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씨티그룹도 지난달 중국 상하이와 다롄에 있던 글로벌 기술 솔루션센터를 축소하고 약 3500명의 인력을 감원한다고 발표했죠. 이들 IT 분야는 중국과의 기술 경쟁이 심화된 상황에 보이지 않는 중국 당국의 탄압을 피해 인력을 축소하거나 인도를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케이스로 볼 수 있는데요.
중국 내 경쟁에 뒤쳐진 전기차 분야에선 실적 악화를 이유로 철수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일본 미쓰비시자동차는 22일 선양항톈미쓰비시자동차엔진제조유한공사와의 합작 관계를 종료하고 사업 운영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2023년 완성차 생산·판매에서 손을 뗀 이후 이번 결정으로 모든 사업 분야를 철수하고 중국을 완전히 떠나기로 한 거죠.
중국 현지매체들은 “한때 자동차 브랜드들의 마케팅 포인트였던 '미쓰비시 엔진'이 더는 매력적인 수식어가 아니게 됐다”며 “지리, 창청, BYD 등 과거에 미쓰비시의 엔진을 사용했던 중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제 독자적인 기술로 엔진을 개발해 선전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기차 전환에 더뎠던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중국 현지 생산시설 축소나 철수는 수 년째 지속되고 있는데요. 혼다자동차는 중국 현지에서 운영 중인 7개 생산공장 가운데 3곳의 운영을 중단했죠. 닛산자동차도 공장 가동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던 장쑤성 공장을 폐쇄하고 현지 생산능력을 줄여가는중입니다.
유통업체 까르푸도 마찬가지 경우인데요. 실적 악화로 힘겨워하던 까르푸는 2019년 프랑스 본사가 중국 유통업체 쑤닝닷컴에 지분 80%를 넘기고 명맥을 유지하다가 2023년부터 점포를 잇따라 폐쇄하며 사실상 사업을 정리했죠. 온라인 판매와 실시간 배달 시스템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중국 소비 생태계에서 오프라인 할인 매장은 하나 둘 폐점했고, 급기야 내수 침체까지 더해져 사업을 정리하게 됐는데요. 중국은 이미 유통업체도 알리바바 계열의 허마셴셩, 징둥 계열의 치셴 등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배송받는 시스템이 완벽히 자리를 잡은 상태죠.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는 오프라인 사업은 자취를 감출 수 밖에 없는 지경입니다.
콧대 높은 스타벅스도 최근 중국 시장에서 그동안 볼 수 없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스타벅스 차이나는 지난 달 일부 음료의 가격을 인하하고, 무설탕 옵션을 내놓는 등 고객 유치 전략을 강화했습니다.
최근 일부 매장에선 무료 스터디룸을 도입해 화제가 됐는데요. 스타벅스 차이나는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중국 남부 광둥성 일부 매장에서 스터디룸(자습실) 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스터디룸은 예약도 필요 없고, 시간 제한도 없습니다. 심지어 커피나 음료 등을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요. 스타벅스 광저우는 중국판 엑스인 웨이보를 통해 스터디룸 오픈을 알리며 "안정적인 무료 와이파이, 충분한 전원과 콘센트, 넓은 좌석에 시원한 냉방을 제공한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에서 토종 브랜드 루이싱 커피 등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스타벅스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주(16~20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3회 중국 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에서 스타벅스는 올해로 3회 연속 전시 부스를 마련했는데요. 스타벅스에게 중국은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입니다. 그만큼 중국 시장에 대해 강하게 어필을 했죠.
중국은 스타벅스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원두 재배, 로스팅, 판매 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국가입니다. 지난 1999년 첫 매장을 연 이후 스타벅스는 20여년간 중국에 커피 산업이 자리잡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죠.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루이싱커피를 필두로 하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와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와의 경쟁 속에 점점 성장이 정체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주머니 사정이 얇아진 중국인들은 한 잔에 9.9위안 마케팅을 앞세운 루이싱커피와 이 보다 더 저렴한 코티커피 등 저렴한 커피를 주로 찾고 있어 상대적으로 비싼 스타벅스는 갈수록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인데요.
중국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지만 일단 스타벅스는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차(茶)의 나라’인 중국은 아직까지 커피 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로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죠. 국내외 커피 업체들이 중국에 계속해서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중국은 2023년 기준 1인당 커피소비량이 약 12~15잔으로, 세계 1위인 한국(약 405잔)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만큼 늘어날 여력도 크죠. 스타벅스가 지금 당장 고전하고 있더라도 그동안 투자했던 것 등을 감안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스타벅스 차이나는 매각설을 일축하고 “시장 잠재력이 상당하다”며 “성장 기회를 포착할 최선의 방법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죠.
매각설이 나오는 기업은 또 있습니다. 미국 식품 기업 제너럴밀스가 중국 하겐다즈 매장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요. 제너럴밀스가 자문사를 선정해 중국 하겐다즈 매장 매각 작업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입니다. 중국 하겐다즈 매장은 지난해 1월 466곳에서 1년 만에 403곳으로 감소했죠. 소비자의 선호도 감소와 함께 중국 내 경기 침체가 영향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최근 수년간 미·중 갈등이 이어지며 ‘궈차오’로 불리는 애국 소비 트렌드가 확산된 점도 미국 브랜드가 부진한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중국에서 고전하는 글로벌 브랜드와 반대로 중국 브랜드의 해외 공략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루이싱 커피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에 2개 매장을 동시에 열었는데요.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핵심 상권에 진출한 것으로 커피 종주국 미국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루이싱 커피가 스타벅스를 제치고 적진의 심장에 뛰어든 것은 단순히 저가 경쟁에 승리한 것만으로는 해석하기 힘듭니다. 초저가 공세에 디지털 전략이 더해진 것이 한 몫 했다는 평가인데요. 루이싱 커피는 스스로를 IT 기업이라 강조하죠.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주문·결제 시스템을 끊임 없이 개선하고, 축적한 소비자 데이터로 고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전장을 바꿔 이뤄지는 커피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이뤄질 지 궁금합니다.
이렇듯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은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경쟁도 매우 심합니다. 모든 업체들이 잠시라도 한 눈을 팔았다가는 하루 아침에 경쟁에서 한참 뒤쳐질 수 밖에 없죠.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하나 둘 짐을 싸는 업체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당장 철수해야 될 지 모르니까요.
*김광수 특파원의 ‘중알중알’은 ‘중국을 알고 싶어? 중국을 알려줄게!’의 줄임말입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뉴스의 배경과 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특성을 쉽게 전달해 드립니다. 구독을 하시면 유익한 중국 정보를 전달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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