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야당 의원 24명에 대한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운명의 날이 밝았다. 이번 투표에서 야당인 국민당이 12석만 잃어도 정국은 여소야대에서 여대야소로 뒤집힌다. 강력한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칭더 총통이 막판 지지 세력을 결집하며 파면 투표를 독려하고 나선 가운데 그의 승부수가 통할지 주목된다.
25일 자유시보와 대만중앙통신 등 대만 언론은 26일 의원 파면 투표를 앞두고 여야가 막판 여론 몰이에 나섰다고 전했다. 민주진보당 성향 단체 수십 곳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이번 해임 투표는 대만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투표”라며 “시민들은 투표 후에도 현장에 남아 감표원 역할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진당 지지자들은 전날인 24일에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총통부 앞에 모여 ‘파면 찬성 대회’를 열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참석 인원은 10만여 명에 달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차오싱청 전 UMC(대만 파운드리 업체) 회장은 “이번 파면 운동은 대만을 사랑하는 측과 대만을 파는 측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국민당 역시 25일 총통부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열며 막판 여론전을 벌였다.
이처럼 대만이 들썩이는 것은 이번 투표로 대만의 외교 노선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미·반중 성향의 라이 총통은 여소야대 구도를 깨기 위해 이번 투표를 승부수로 꺼내 들었다. 라이 총통은 지난해 1월 총통 선거에서 41%의 득표율로 승리했으나 같은 날 입법위원 선거(총선)에서 집권 민진당이 113석 중 51석을 얻는 데 그치며 국정운영 동력을 잃은 상태다.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의 의석수는 각각 52석과 8석이다.
국민당과 민중당은 연합해 정부 예산안을 대폭 삭감하는 등 라이칭더의 정책에 잇따라 제동을 걸어왔다. 이에 민진당 성향의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면서 결국 파면 투표가 성사됐다. 만약 이번 투표에서 야당 의원들이 무더기 파면될 경우 민진당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게 된다. 라이 정권 입장에서는 그간 번번이 야당에 가로막혔던 친미·반중 외교 노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반대로 대다수 의견에 대한 파면이 부결될 경우 라이 정권과 민진당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투표는 26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며 해당 투표장에서 곧바로 개표가 실시된다. 부패 혐의로 정직 중인 제2야당 민중당 소속 가오훙안 신주시장에 대한 투표도 이번에 함께 실시된다. 대만 공직인원선거파면법에 따르면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고 해당 선거구 유권자의 25% 이상에 달하면 파면이 확정된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23일에는 장치전 부입법원장(국회부의장) 등 국민당 소속 지역 입법위원 7명에 대한 파면 투표가 한 차례 더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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