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연일 이어지던 7월, 6살 반려견을 데리고 제주여행을 다녀온 A씨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끔찍한 장면을 마주했다.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편에 위탁수하물로 실린 자신의 반려견이 도착 직후 숨져 있었던 것이다.
27일 SBS 보도에 따르면 A씨는 항공사 측으로부터 화물칸에 온도 조절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려견은 공기가 통하는 이동장에 입마개까지 착용한 채 탑승했다. 하지만 김포공항 도착 후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이송됐고, 체온은 42.8도까지 치솟아 있었다. 결국 열사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폐사했다.
문제는 항공사 홈페이지엔 “혹서기 반려동물 위탁 운송 시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주의 문구만 있었을 뿐, 해당 기종 화물칸에 냉방 장치가 없다는 구체적인 안내는 없었다는 점이다. A씨는 이 점에 대해 “명확히 알았더라면 화물칸에 태우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수속 절차는 규정에 따라 진행됐으며 입마개 착용 상태를 보고 고객에게 우려를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또 최근 일주일간 같은 기종에서 이뤄진 반려동물 운송 27건에서는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같은 하늘, 다른 기준…국내외 항공사 기준 비교해보니
국내 주요 항공사들은 반려동물 기내 탑승을 허용하고 있지만, 체중·크기 제한 탓에 대부분의 중·대형견은 화물칸 위탁 외 선택지가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선 기준 3만 원의 요금으로 반려동물 기내 동반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이동장 무게를 합해 7kg 이하, 이동장 크기는 삼변의 합 115cm 이하, 높이 21cm(소프트케이스는 26cm 이하)로 제한된다. 좌석 밑에 보관해야 하며, 성인 승객 1인당 1마리만 동반 가능하다. 성수기에는 항공편당 전체 탑승 가능 마릿수도 제한된다.
반면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9kg 이하까지 허용해 조금 더 완화된 조건을 적용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기내 동반만 허용하고 화물칸 위탁은 받지 않지만, 이 역시 반려동물과 케이지 합산 무게가 9kg 이하여야 하고 항공편당 최대 6마리까지만 허용된다. 예약이 늦으면 동반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티웨이항공도 9kg 이하 조건을 두고 ‘t’pet’ 서비스를 통해 일부 항공편에서만 반려동물 탑승을 허용한다. 저비용항공사(LCC) 중 다수는 국제선에서는 동반 탑승을 받지 않거나 항공편별 조건이 크게 다르다.
국내 항공사들이 대부분 반려동물의 기내 탑승을 7~9kg 이하로 제한하는 것과 달리 해외 항공사들은 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보다 현실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편이다.
유럽 항공사들은 대체로 반려동물과 이동장을 포함한 총 무게가 8kg 이하일 경우에만 기내 탑승을 허용한다. 에어프랑스(Air France), SAS, 이베리아(Iberia), 에게안항공(Aegean) 등은 이 기준을 따르고 있으며 이동장 크기 역시 앞좌석 아래 보관 가능할 정도로 제한한다. 이동장 자체가 1~2kg인 점을 감안하면 반려동물의 체중이 6kg을 넘을 경우 사실상 기내 탑승이 어렵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항공사들(델타, 아메리칸, 유나이티드, 사우스웨스트 등)은 무게 제한을 명시하지 않는다. 대신 이동장이 앞좌석 아래에 들어가야 하고 반려동물은 탑승 내내 이동장 안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강조한다. 크기 기준만 충족하면 9~10kg 안팎의 중·소형견은 대부분 기내 탑승이 가능해 유럽보다 실질적으로 더 유연한 기준으로 평가된다.
일부 항공사는 더 넉넉한 기준을 적용한다. 미국 스피릿항공(Spirit Airlines)은 18kg, 멕시코의 비바아에로부스(VivaAerobus)는 12.25kg, 브리즈항공(Breeze Airways)은 11.3kg까지 기내 반입을 허용하고 있다.
한편 제주도처럼 배편 이용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일부 보호자들이 화물칸 탑승의 위험을 피하고자 여객선을 이용하기도 한다. 일부 선박은 반려동물 전용 공간을 갖추거나 보호자와 동반 탑승이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 화물칸보다 안전하고 심리적 부담도 덜한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이는 국내 이동에 한정된 선택지일 뿐이다. 해외 이동의 경우 지리적 특성상 항공기 이용이 불가피한 만큼 항공기의 반려동물 수송 조건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내 반입 거부 뒤 벌어진 참극…반려견, 화장실에서 발견
반려동물 탑승 문제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때로는 극단적인 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57세 미국인 여성 앨리슨 아가사 로렌스는 9살 반려견 ‘타이윈’을 데리고 콜롬비아행 항공기에 탑승하려 했다.
하지만 항공사 측은 예방접종 증명서, 건강진단서, 국가별 반입 조건 등 필수 서류가 미비했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했다. 화물칸 위탁 역시 허용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직후 발생했다. 로렌스는 반려견을 데리고 공항 여자 화장실로 향한 뒤 20분 넘게 한 칸에 머물렀다.
이상함을 감지한 공항 직원이 다시 화장실을 확인했을 때 쓰레기봉투에서 의심스러운 무게와 냄새가 감지됐다. 안에는 목줄과 사료통, 그리고 죽은 타이윈이 담겨 있었다.
경찰이 부검을 의뢰한 결과 개는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개 몸 안의 인식칩과 인식표를 토대로 로렌스를 특정했고, 그녀는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 진술에서 로렌스는 “개와 함께 비행기를 탈 수 없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동물복지 선진국 대한민국 그려본다”…대통령 발언, 실현 가능해질까
KB금융그룹이 최근 발간한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591만 가구, 약 1546만 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30%에 해당한다.
하지만 항공 운송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만 반려동물의 기내 동반을 허용하고 있어 중형견 이상의 경우 화물칸 위탁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화물칸의 환경이나 안전장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부족하고 기온 변화에 따른 위험성 경고만 반복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권에서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국민의 삶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1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려견 바비의 사진과 함께 “반려 인구 1500만 시대, 우리 국민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살고 있다”며 “존재만으로도 소소한 행복과 따뜻한 위로가 돼주는 바비를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넘치는 사회를 위해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하겠다”며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동물복지 선진국 대한민국을 그려본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시대, 선택지가 제한된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동물과 사람의 공존을 위한 제도 개선, 지금이 그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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