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에 시간당 142.1㎜라는 기록적인 비가 쏟아진 가운데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더워질수록 예상하지 못한 폭우가 나타나는 ‘더블 펀치’ 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까지 이어진 폭우로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설치된 전남 무안공항에는 이 기간 289.6㎜의 비가 쏟아졌다. 특히 전날 오후 7시 10분부터는 시간당 142.1㎜의 강수량이 측정됐다. 지난달 17일 충남 서산 지역에 시간당 최대 114.9㎜ 비가 내려 200년 만의 폭우로 기록됐는데 한 달도 안 돼 기록을 다시 한 번 갈아 치운 셈이다. 무안공항 외에도 전남 무안 운남면에 최대 257.5㎜의 비가 내렸고 광주 186.7㎜, 담양 봉산 185.5㎜, 광주 풍암 175㎜, 함평 월야 171㎜ 등에도 호우가 쏟아졌다.
광주·전남 지역을 덮친 호우로 피해도 잇달았다. 무안에서는 전날 물살에 휩쓸려 실종된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4시 30분 기준 6개 시도 27개 시군구 1836세대 2523명이 일시 대피했고 이 중 1820세대 2498명은 귀가하지 못한 상태다.
이번 폭우는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쳤다. 한반도 상공에 있던 고기압이 약화돼 동쪽으로 이동한 사이 제8호 태풍 ‘꼬마이’가 남긴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쪽에서 유입됐고, 이 공기가 북쪽에서 남하한 건조한 티베트 고기압과 부딪쳐 강수대가 형성됐다. 특히 무안 지역 주변에 섬이 많은 지형적 특성도 강한 비를 뿌린 이유로 꼽힌다. 작은 규모의 저기압이 전남 해안에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고기압 사이 하층제트(고기압과 저기압 사이의 기압골을 따라 대기 하층에서 빠르게 부는 바람)로 발달했고 그 과정에서 무안 인근 섬들과 부딪쳐 공기가 상승하면서 시간당 142㎜를 넘는 강력한 비구름을 유발한 것이다.
전례 없는 이른 폭염으로 해수면 표면이 달궈져 수증기가 늘어난 점도 잦아지는 폭우와 연관이 있다. 대기가 지닌 수증기량은 온도와 비례 관계다. 기상 이론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포화수증기량도 약 7% 늘어난다. 수증기가 많아지면 ‘비가 내릴 에너지’가 풍부해져 비의 양도 많아진다. 2021년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는 “지구가 평균 4도 더워질수록 10년·50년 빈도의 폭우 발생이 각각 2배·3배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해양기후예측센터(OCPC)에 따르면 6월 전지구 평균 해면수온은 평년보다 0.4도 상승했다. 이는 1995년 관측 이래 역대 세 번째로 높았던 수치다.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증기 증가 때문에 폭우뿐 아니라 폭염도 자주 나타나는 것”이라면서 “2020년 이후 ‘태평양 10년 주기 변동’에 따라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진 점도 극한 기후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권원태 박사(전 APEC 기후센터 원장)는 “전 세계적으로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똑같은 조건이라도 강수량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면서 “과거에 나타나지 않았던 패턴이 생기면서 호우 대비도 까다로워지고 있지만 온난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기후’에 적응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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