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번에 다시 만나게 돼 너무 기쁘고 설렙니다.”
피아니스트 백혜선(60)은 18일 서울 종로구 종로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4년 만에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NOB)와 협연 무대에 오르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당시 그는 콩쿠르 본선에서 이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4위를 차지했고 이는 여전히 한국인 피아니스트의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번 공연은 NOB의 첫 내한으로 9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안동·경기·공주·대구·고양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열린다. 지휘는 상임지휘자인 안토니 헤르무스가 맡는다.
백혜선은 1989년 윌리엄 카펠 콩쿠르 1위, 1990년 리즈 콩쿠르 5위, 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를 차지하는 등 1990년대 국제 무대에서 한국 피아니스트의 존재감을 알린 ‘원조 콩쿠르 여제’다. 20대 나이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며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현재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피아노과 학과장을 맡아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에는 임윤찬, 김세현 등이 수학하고 있으며 손민수도 교수로 활동하는 등 한국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 백혜선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다. 그는 “이 곡은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작품”이라며 “웅장한 1악장, 서정적인 2악장, 활기찬 3악장이 주는 감동을 잘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혜선은 요즘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에 대해 “아이돌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예전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신이었는데 요즘 연주자들은 스스로가 롤모델”이라며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윤찬, 김도현 같은 연주를 들으면 마치 외계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와 접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앞으로 더 뛰어난 아이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자로 바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연습할 때마다 깨닫는다고 한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숨을 쉬는 일과 같습니다. 악기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제 자신과도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늘 피아노와 함께하며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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