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1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와 관련, ‘동결-축소-비핵화’라는 이른바 3단계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북핵을 해결할 해법으로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한계를 지적하면서 ‘적극적인 대화’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목표하는 바는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지만 말로만 외치는 것으로 실현될 수 없다”며 “1단계 핵과 미사일을 동결시키고 2단계 축소, 3단계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단계적 접근법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이른바 ‘전략적 인내’로 북한을 방치해왔기에 북한이 핵을 동결하지 않고 더 확대해왔다”며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략적 인내는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표적인 대북 정책으로 경제적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 붕괴를 기다리겠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이 대통령은 “평화적으로 공존해 서로 위협이 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북한과의 대화와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아울러 “남북 간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북한과 일본, 북미 간의 대화와 협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이 대통령의 복안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이런 북핵 해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됐고 실패했다는 게 그 이유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일리 있는 지적”이라면서도 “다만 전임 정부에서 완전히 와해된 남북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불가피한 접근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 채널의 복원과 북미 대화가 어떤 식으로든 재개됐을 경우 한국의 역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해석했다.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대북 문제에서 대화 정치를 재개하겠다는 이 대통령에 감사하다”고 치켜세웠다.
한일이 맺은 강제징용 및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서는 번복이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거 정권에서 합의된 강제징용과 위안부 배상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으로서는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의”라면서도 “(하지만) 국가 간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히 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일본 아베 신조 정권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합의했고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 소송 해결책으로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금 등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제시해 현 여권이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매우 가슴 아픈 주제”라면서도 “되도록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 문제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도 제안했다. 그는 “(과거사는) 경제적 문제기보다 감정적 문제로 진심이 담긴 위로의 말을 피해자에 건네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배상은 부수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경제적 측면이 부각돼 마치 양국이 돈 문제로 싸우는 것처럼 변질되고 있어 가슴 아프다”며 “한국과 일본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더 인간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각수 전 주일본 대사는 “정책의 연속성을 부각한 것은 외교적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실 인식은 좋지만 해법을 구체화시킬 전략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신공동선언을 내놓을 지가 관심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새로운 공동선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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