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간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판매자 수수료를 인상하자, 판매자들 사이에서 이를 피하려는 ‘기상천외한 계좌번호 공유법’이 등장하고 있다.
2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수료를 피하려는 판매자들의 ‘꼼수 노하우’가 줄줄이 공유됐다. 누군가는 강아지·고양이 사진 속에 계좌번호를 합성해 올리며 “사진 잘 보면 계좌번호가 숨어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또 다른 판매자는 계산기 앱 화면에 ‘123+456+7890’ 식으로 숫자를 나눠 입력한 뒤 “이걸 다 더하면 제 계좌번호가 된다”고 알려준다고 밝혔다.
문자도 비틀어 적어야 한다. “여기로 door(문)자나 car(카)톡 주세요”처럼 ‘계좌·카톡’을 직접 쓰지 않고 비슷한 발음을 가진 영어 단어를 섞어 쓰는 식이다. 숫자와 글자를 뒤섞은 ‘7ㅖ조r번호’ 같은 외계어 표기도 등장했다. 아예 종이에 계좌번호를 손글씨로 적어 찍은 사진을 보내거나, 프로필 사진·닉네임에 계좌번호를 숨겨놓는 방법도 공유됐다.
심지어 이메일 주소를 건네고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달라”며 외부 채널로 계좌번호를 주고받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일부 이용자들은 “번개장터 시스템에 걸리지 않으려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거래해야 한다”며 “이제는 계좌번호를 주고받는 방식이 거의 암호 수준”이라고 자조 섞인 반응을 내놨다.
◇ ‘안전결제’ 의무화가 불러온 불만
이 같은 현상은 지난해 8월 번개장터가 업계 최초로 모든 거래에 ‘안전결제’를 의무화한 뒤 본격화됐다. 기존에는 구매자가 안전결제를 선택할 수 있었고 수수료도 구매자가 부담했지만, 개편 이후 모든 거래가 안전결제로 전환되면서 판매자가 수수료를 내야 했다. 당시 사측은 안전결제 시행 후 두 달 만에 사기 거래 신고 건수가 8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판매자들 불만은 이어졌다. 꾸준히 번개장터를 이용해온 A씨(27)는 “사기 피해는 줄었지만 혜택은 구매자가 보는 건데, 수수료는 우리 몫”이라며 “마진이 낮은 중고거래 특성상 사실상 남는 게 없어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아이돌 굿즈를 판매해온 B씨(25) 역시 "수수료가 높아 계좌번호로 받으려고 꼼수를 쓰는 게 현실"이라며 "과거에 됐던 수법이 요즘엔 막혀서 점점 더 참신하고 복잡한 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행위는 번개장터가 규정한 위반 행위 중 하나인 ‘안전결제 거래를 거부하거나 현금·외부 채널 거래를 유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돼 적발될 경우 15일간 판매 제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 9월부터 수수료 최대 10%…“더 참신한 방식 늘어날 것”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번개장터는 오는 9월 17일부터 수수료를 한 차례 더 올린다. 일반 판매자는 3.5%에서 6%로, 전문 판매자는 5%에서 카테고리별 6~10%까지 차등 부과된다. 번개머니를 활용하면 실질 수수료는 비슷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지만, 판매자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중고거래 플랫폼들의 정책과 비교해도 판매자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다. 중고나라는 구매자에게 3.5%의 안전거래 수수료를 받고, 크림은 판매자에게 거래 등급별로 5~6% 수준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반면 당근은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대신 지역 기반 광고 사업을 본격화해 지난해 광고 매출을 전년 대비 48%나 끌어올렸고, 올해 1분기에도 전체 매출의 99% 이상이 광고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수수료 인상은 오히려 판매자들의 ‘탈(脫) 번개장터’나 비공식 거래 수법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미 ‘door자·car톡’ 같은 기상천외한 계좌 공유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9월 이후에는 더 다양한 방식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번개장터의 만성 적자도 깔려 있다. 번개장터는 2011년 설립돼 2020년 사모펀드(PEF) 운영사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프랙시스)가 1500억 원에 경영권을 인수했다. 인수 전인 2017년과 2018년에는 각각 6억 원, 21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후 줄곧 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매출은 4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5%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196억 원에 달했다.
반면 경쟁사 당근은 지난해 매출 1891억 원, 영업이익 376억 원으로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췄다.
한편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23년 30조 원에서 지난해 43조 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중고거래 앱 사용자는 당근(2125만 명), 번개장터(467만 명), 중고나라(168만 명)로 집계됐다. 올해 역시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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