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부의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 청동 조각상이 실제로는 중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그동안 메소포타미아나 고대 페르시아에서 유래했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 연구진이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에 게재될 연구를 통해 이 사자상의 구리가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채굴된 사실을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연구진은 사자상에 사용된 구리 광석을 납 동위원소 분석법으로 조사해 그 지질학적 기원을 추적했다. 납 동위원소는 금속의 원산지를 밝혀내는 신뢰성 높은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 결과는 재질뿐만 아니라 디자인 측면에서도 중국과의 연관성을 보여줬다. 베네치아의 사자상이 중국 당나라 시대 무덤을 지키는 동물상인 진묘수와 흡사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동상이 베네치아로 옮겨진 뒤, 뿔이 제거되고 귀가 짧아지는 등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의 표준적인 모습으로 변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베네치아 중심인 산마르코 광장의 기둥 꼭대기에 있는 이 사자상은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인 성 마르코를 표현한 것이다. '요한 묵시록'에서 '날개 달린 사자'로 묘사된 마르코는 9세기경 그의 유해가 베네치아로 옮겨진 이후 이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현재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최우수상도 이 사자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연구 공동 저자인 마시모 비달레는 "베네치아는 미스터리로 가득한 도시지만, 한 가지는 풀렸다. 성 마르코의 사자는 중국산이며, 실크로드를 걸어왔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사자상이 베네치아 출신 상인이자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의 아버지와 삼촌이 몽골 궁정을 방문했을 때 들여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정확한 유입 경로와 시기는 역사학자들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이번 연구가 중세 시대 동서양 간의 활발한 교류와 베네치아의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를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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