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등 재일동포 실업가들이 모국 골프 발전과 국제적 선수 육성을 취지로 대회를 창설했다. 이름하여 동해오픈. 재일동포 골프 동호인들의 고국을 그리는 마음을 대회 이름에 담은 것이다. 일본에서 고국을 보려면 동해를 바라봐야 하기에 동해오픈이 됐다.
대회 초대 집행위원 14인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인 강정부 회장은 “한국에 우리가 직접 대회다운 대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으게 됐다”며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동해’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동해를 바라보며 모국을 그리워한다는, 알려진 의미가 맞다”고 돌아봤다.
신한금융그룹이 대회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선 1989년부터는 신한동해오픈으로 열리고 있다. 당시 우리나라 초유의 순수민간자본은행인 신한은행과 제일투자금융, 신한증권이 공동 주최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국내 순수 기업 스폰서 프로골프 대회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회가 바로 신한동해오픈이다.
제41회 신한동해오픈이 골프 팬들을 찾아간다. ‘40주년’은 2021년이었고 지난해 40회를 치렀다. 올해는 새로운 10년을 여는 첫 대회의 의미를 담아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파72)로 돌아왔다.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아시안 투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공동 주관으로 치러진다. 올해 잭니클라우스에서 열리는 국내 대회는 남녀 투어를 통틀어 신한동해오픈뿐이다.
입장권은 공식 티켓 판매채널인 ‘에티켓(eticketgolf)’에서 온라인 예매가 가능하며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골프티켓’으로 검색해도 쉽다. 신한카드 결제 고객 및 인천 시민에게는 50% 할인 혜택이 제공되며 만 18세 미만은 무료 입장이다.
11년 만의 ‘잭니 대전’
신한동해오픈은 1981년 남서울을 시작으로 명문 코스들을 여럿 다니며 코스에 어울리는 명승부를 연출해왔다. 잭니클라우스에서 치렀던 대회들도 흥미로웠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잭니클라우스에서 열렸는데 폴 케이시(잉글랜드), 김민휘가 첫 두 해를 우승했고 배상문이 2013·2014년 2년 연속 우승했다. 잭니클라우스는 이듬해인 2015년 프레지던츠컵을 개최하며 세계적인 토너먼트 코스로 이름을 떨쳤다.
케이시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3승과 유러피언 투어(현 DP월드 투어) 15승의 강자.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LIV 골프에서 활약하고 있다. 신한동해오픈 출전 당시는 유럽 11승, PGA 투어 1승을 올리고 있었다. 한국 골프 대회 출전이 처음이었는데 마지막 18번 홀(파5) 버디로 김경태와 강성훈을 1타 차로 누르고 연장 없이 트로피를 들었다. 케이시의 우승 스코어는 이븐파였다. “부상 탓에 2년 간 힘든 시절을 보냈는데 최경주가 소개해준 한방침 시술을 받고서 우승까지 했다”는 말을 남겼다. 최경주는 3오버파 공동 5위에 올랐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의 기대주 김민휘는 2012년 신한동해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4언더파로 교포 선수 케빈 나(미국)와 동타를 이룬 뒤 18번 홀에서 치른 연장에서 파를 지켜 1.5m 파 퍼트를 놓친 케빈 나를 따돌렸다. 김민휘는 그해 신인상을 탔고 이듬해 미국 2부 투어로 무대를 옮겨 2015년 PGA 투어 입성의 꿈을 이뤘다. 올해는 시드전을 거쳐 다시 KPGA 투어를 뛰고 있다.
KPGA 투어 9승, PGA 투어 2승의 배상문도 올해 국내 투어를 뛰고 있어 11년 만의 신한동해오픈 타이틀 탈환을 노린다. 2013년 배상문은 9언더파를 작성, 3타 차로 정상에 올랐다. 그해 5월 PGA 투어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2014년에는 13언더파로 우승 스코어를 늘렸다. 4라운드 14번 홀까지 노 보기를 이어갈 만큼 물샐 틈 없는 경기력을 뽐냈다. PGA 투어 프라이스닷컴 오픈 우승 바로 다음 달에 신한동해오픈 2연패 위업을 이뤘다. 11년 만에 잭니클라우스로 돌아온 대회에서 배상문은 11년 만의 왕좌에 도전한다. 5월 SK텔레콤 오픈 공동 11위가 올해 최고 성적이다.
총상금 15억, 우승자엔 3개 투어 시드
신한동해오픈은 KPGA 투어 대회이자 아시안 투어, JGTO 대회다. KPGA 투어 대회로 출범한 뒤 대회 규모를 키워 2019년부터 3개 투어 공동 주관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승자는 ‘벼락 시드 부자’가 된다. 3개 투어 출전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인 3개 투어 공동 주관은 일단 올해까지여서 출전 선수들의 우승 의지는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아시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이는 국제 대회로서의 위상과 경쟁력에 걸맞게 주최 측은 상금도 올렸다. 지난해의 14억 원에서 1억 원 늘어난 15억 원이다. 15억 원은 DP월드 투어 공동 주관인 제네시스 챔피언십을 제외하면 KPGA 투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금액이다. 16억의 KPGA 선수권 다음. KPGA 선수권은 올해 68회째를 치른 우리나라 최고 전통의 골프 대회다.
올해 신한동해오픈 우승 상금은 지난해보다 1800만 원 늘어난 2억 7000만 원이다. KPGA 선수권 등 전반기에만 2승을 올린 옥태훈은 신한동해오픈 타이틀마저 거머쥐며 상금왕과 제네시스 대상을 예약하려 한다. 최근 옥태훈에 이어 이번 시즌 두 번째 다승자가 된 문도엽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상금과 제네시스 포인트 2위를 달리는 이태훈은 물론 김백준, 최진호, 배용준, 신용구, 최승빈, 이정환, 김홍택 등 톱 랭커들이 출동한다.
일본에 또 질 순 없다
3개 투어 강자들이 출동하는 만큼 선수들은 소속된 투어의 자존심을 걸고 싸운다. 지난해 대회는 사실상 JGTO 세상이었다. 올핸 절대 안방을 내주지 않겠다는 KPGA 투어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인천 클럽 72 오션코스(파72)에서 진행된 지난해 대회에서 히라타 겐세이(일본)는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했다. 우승 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나셨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아버지는 일본인이다.
아시안 투어 소속 트래비스 스마이스(호주)의 추격을 1타 차로 따돌린 히라타는 JGTO 후지산케이 클래식에 이은 2주 연속 우승으로 한국 투어(5년), 일본 투어, 아시안 투어(이상 2년) 시드를 야무지게 챙겼다. 3위 스즈키 고스케 등 공동 9위까지 톱 12명에 일본 선수가 7명이나 들었다. 한국 선수 최고 순위는 김민규가 기록한 4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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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JGTO에서는 이시카와 료와 오기소 다카시, 이마히라 슈고, 가와모토 리키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시카와는 3년 연속 출전이다. 지난해 11월 미쓰이 스미토모 비자 다이헤이요 마스터스 우승으로 JGTO 통산 20승을 채운 전설이다. 2009년 세계 랭킹 29위까지 올랐던 일본의 원조 골프 천재. 그해 18세 80일의 나이로 JGTO 최연소 상금왕을 차지했고 아마추어 시절인 2007년에 투어 첫 우승, 프로 전향 1년 만에 상금 1억 엔 돌파 등의 숱한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 신한동해오픈 마지막 날 66타를 쳐 26계단을 점프하면서 공동 20위로 마무리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오기소는 지난해 6월 KPGA 투어와 JGTO 공동 주관의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을 우승한 경험이 있고 이마히라도 과거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해 165㎝ 작은 키에도 300야드 장타를 펑펑 날려 화제를 모았던 강자다. 지난해 일본오픈 제패로 통산 10승 고지를 밟았다.
아시안 투어 대표는 태국의 사돔 깨우깐자나와 재즈 쩬와타나논, 짐바브웨의 스콧 빈센트 등이다. 깨우깐자나는 올해 5월 코오롱 제67회 한국오픈 우승 경력을 자랑한다. 한국오픈 우승 자격으로 7월 디 오픈에도 나가 1라운드 상위권에 오르면서 관심을 받았다. KPGA 투어 신인왕 수상이 유력하다.
한국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올라 강렬한 인상을 남긴 2008년생 고교생 국가대표 김민수는 신한동해오픈에서 다시 한 번 ‘아마 반란’을 보여줄 태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에서 골프로 전향한 김민수는 180㎝ 넘는 키로 310야드 이상 드라이버 샷을 자신 있게 때린다. 지난해 국내 최고 권위 아마추어 대회인 허정구배 우승으로 이름을 알렸고 올해 대만아마추어선수권도 제패했다. 최근 허정구배를 2연패했다. 현재 대한골프협회(KGA) 랭킹 1위. 내년 아시안게임 출전이 당장의 목표다.
신한금융그룹 후원 선수로 김민수 외에 김성현과 송영한도 출격한다. 2022~2023시즌 PGA 투어에 데뷔한 김성현은 지난해 부진으로 투어 카드를 잃었지만 올해 2부인 콘페리 투어에서 맹활약하며 빅 리그 복귀를 눈앞에 뒀다. 1승과 준우승 두 번 등으로 포인트 랭킹 6위에 올라있다.
한국과 일본을 찍고 미국에 진출한 김성현은 한일 양국 프로골프협회 선수권을 석권한 기록으로 유명하다. 2020년 월요 예선을 거쳐 출전한 KPGA 선수권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일본 PGA 챔피언십을 제패했다. ‘58타 사나이’라는 별명도 있다. 일본에서 뛰던 2021년 5월 골프파트너 프로암 토너먼트 최종 4라운드에서 이글 2개와 버디 8개로 꿈의 스코어를 작성했다.
김성현의 국내 나들이는 올해 두 번째다. 6월 KPGA 선수권에서 공동 10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는 PGA 투어 복귀를 앞두고 국내 팬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인 셈이다. 물론 강력한 우승 후보임에 틀림없다.
신한동해의 사나이들
2013·2014년 우승한 배상문은 이 대회 역사에서 마지막 ‘멀티 챔피언’이다. 배상문 이전 신한동해오픈의 사나이는 최경주와 최상호가 있다. 최경주는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CC 남코스에서 열렸던 2007년과 2008년에 연속 우승했다. PGA 투어 2승을 기록 중이던 최경주는 2007년 매 라운드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로 우승했다. 앞서 2005년 연장 접전 끝 준우승, 2006년 3위로 돌아섰던 아쉬움을 훌훌 털었다.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최경주는 경기 중반 짐 퓨릭(미국)에게 잠깐 선두를 내줬지만 후반 맹타로 신한동해오픈 첫 우승을 완성했다. 2008년 우승은 최경주에게 생애 첫 2연패라는 영광을 안겼다. 선두에 2타 뒤진 채 최종일 경기에 나선 데다 첫 홀 보기로 출발했지만 2번 홀부터 징검다리 버디로 분위기를 가져왔다. 11번 홀에서 환상적인 이글 퍼트로 공동 선두에 오른 뒤 결정적 버디를 보태며 승기를 틀어 쥐었다.
통산 43승으로 KPGA 투어 최다승 기록을 보유한 전설 최상호는 신한동해오픈에도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출전 선수 명단에 다양한 국적의 강자들이 많아졌는데 1985년 당시 한국의 간판 스타 최상호는 일본 선수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존심을 지켜냈다. 1993년과 1995년 우승도 최상호의 차지였다. 1993년 대회는 그때까지 가장 화려한 해외 톱 랭커들의 출전으로 화제였다. 아시안 투어 상금 랭킹 2위의 셰진성(대만), 미국의 게리 노퀴스트, 호주의 브레드 앤드루스 등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하지만 우승은 그들 중에서 나오지 않았고 최상호가 가져갔다. 우승 없이 넘어갈 뻔했던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맞은 1995년 대회. 최종일 선두에 4타나 뒤져 이번엔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최상호는 후반 9홀에 따라잡았다. 보기 없이 버디 4개를 잡아 최경주, 마이크 채터(미국) 등을 연장으로 끌고 간 것. 연장전 버디로 최상호는 기어이 대회 최초의 3회 우승 기록을 썼다. 모두 한성CC에서 이룬 업적이다. 세 차례 우승 기록은 지금까지도 최상호만이 갖고 있다. 최경주는 1995년 대회에서 아깝게 우승은 놓쳤지만 당시 프로 2년 차로서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박상현은 우승은 한 번이지만 2018년 보여준 ‘임팩트’가 정말 컸다.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GC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1~4라운드 내내 선두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로 우승했는데 특히 최종일 경기는 박상현의 골프가 얼마나 단단하고 강렬한지 증명한 라운드였다. 버디만 8개를 잡아 63타를 적었고 합계 22언더파 262타의 대회 최소타이자 코스 레코드로 넉넉하게 우승했다. 난도 높은 코스에서 나흘간 72홀을 치르면서 보기는 단 2개였고 버디 24개를 쓸어 담았다. 2위 스콧 빈센트(짐바브웨)를 5타 차로 따돌렸다. 2013년과 2023년 공동 6위에 올랐고 다른 해에도 10위권 성적이 보통일 만큼 박상현은 신한동해에서 활약상이 뚜렷하다.
2020년 김한별, 2021년 서요섭, 2023년 고군택은 신한동해오픈 우승으로 자신들이 왜 KPGA 투어의 대표 영건인지 증명해 보였다.
신한동해오픈은 육중한 트로피로도 유명하다. 2010년 26회 대회를 맞아 새롭게 제작한 뒤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무게 12.2㎏에 높이 71㎝, 지름 27㎝인 PGA 챔피언십의 워너메이커 트로피가 크고 무겁기로 유명한데 신한동해오픈 트로피는 지름과 높이는 워너메이커 트로피와 비슷하고 무게가 1.8㎏ 더 나가는 14kg이다.
신한동해 키드
대회 이름에 ‘신한동해’가 들어가는 아마추어 대회가 지난해 처음 열렸다. 신한금융그룹이 신한동해오픈 자문위원단과 함께 대한골프협회 주관 대회를 만든 것. 신한동해 남자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다. 첫해는 강원 원주의 오로라 골프앤리조트(파70)에서 국가대표와 국가상비군 등 쟁쟁한 아마추어 선수 112명이 참가한 가운데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치러졌다.
상위 입상자들에게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 등 각종 혜택과 부상이 주어졌는데 특히 우승자에게는 신한동해오픈 출전권이 돌아갔다. 주인공은 서강고 1학년생인 국가상비군 유민혁. 4라운드 합계 15언더파 265타를 기록했다.
유민혁은 올해도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한다. 지난달 충북 영동의 일라이트 골프앤리조트(파72)에서 치른 제2회 신한동해 남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22언더파 266타로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2위를 한 국가상비군 안해천을 2타 차로 제쳤다. 유민혁은 올해는 국가상비군이 아닌 국가대표 자격으로 나가 2라운드에 9언더파 63타를 몰아치기도 했다.
그는 “선두로 나선 초반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한 조로 플레이한 안해천 선수와 같이 버디와 파를 기록하면서 버텼다”며 “18번 홀에서는 티샷 실수로 더블 보기를 범했지만 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신한동해오픈은 컷 탈락했다. 이번엔 지난해와 달리 꼭 3라운드와 최종 4라운드에 진출할 것이다. 다른 목표는 없다. 컷 통과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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