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기습적으로 덮쳐 체포·구금한 한국인 ‘불법체류’ 근로자 300여 명이 이르면 10일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 추방은 일단 모면하게 됐지만 대미 투자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파견된 우리 근로자들이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불법체류’라는 낙인을 찍히기까지 우리 기업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알고도 사실상 방치해 온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차르(국경 문제 총책임자)’인 톰 호먼은 불법체류자 고용이 미국인 고용과 임금에 악영향을 준다며 “일터에서의 이민 단속을 확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국에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공장을 짓고 가동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숙련된 전문 인력 파견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한국 인력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 등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은 싱가포르(5400명), 호주(1만 500명)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할당하는 연간 특별비자 발급 쿼터제를 한국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꾸준히 요청해 온 ‘한국인 전용 취업 비자(E4)’ 신설은 2013년 미국 의회에서 입법 발의됐지만 한미 정부의 무관심 속에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기업들이 단기 상용 비자(B1),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한 편법 출장 관행에 빠진 이유다.
초유의 한국인 구금 사태를 겪고서야 정부와 여당이 미국 비자 체계 개선 추진에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기업들의 대미 투자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배터리 제조 등에 대해 아는 (외국) 인력을 불러들여 일정 기간 머물게 하고 우리 국민을 훈련시켜야 한다”며 비자 문제 개선을 시사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을 돕는 한국인이 신변을 보호받으며 당당하게 일하지 못한다면 한미 ‘윈윈’의 산업 협력이 불가능해진다. 정부는 이 점을 트럼프 행정부에 강력하게 설득해 한국이 충분한 특별비자 쿼터를 할당받도록 담판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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