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되짚어보면 그가 마치 마키아벨리의 화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대표작 ‘군주론’에서 “현명한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선함을 넘어서는 전략적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또 “필요할 때는 나쁜 일을 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도 했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지도자의 ‘비르투(virtù)’는 도덕적 선함, 윤리적 가치, 인격적 품성을 뜻하는 ‘덕목(virtue)’과는 다르다. 그것은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권력을 유지하고 국익을 도모할 수 있는 실천적 역량을 의미한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인 이재명의 ‘덕목’을 보고 그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비르투’를 보고 선택한 이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며 현시점에서 볼 때 그들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최근 이 대통령이 보이고 있는 외교 행보는, 그가 일국의 최고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비르투’를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 시절 반일·반미적 성향을 보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23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를 복원하겠다며 홀연히 일본에 건너갔을 때 이 대통령은 “친일을 넘어 숭일(崇日)이다.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하며 병자호란 때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했던 역사적 사건에 빗대어 강하게 비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패악질”이라며 일본을 맹비난했고,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가 출범했을 때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종속적 위치에 놓일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미 점령군” 발언과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발언은 고든 창과 같은 미국의 극우 인사들이 이 대통령을 “맹렬한 반미주의자”이자 “친중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비난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과거 발언들을 고려하면 최근 이 대통령이 보여준 친일·친미적 행보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그러나 과거 반일·반미적 언행은 그의 이념적 성향의 발현이라기보다는, 국내 정치에서 지지층을 결집해 당권을 장악하고 궁극적으로 집권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최근의 친일·친미적 행보는 험난한 국제 질서 속에서 실익을 지키기 위한, 마키아벨리적 ‘현실 정치’의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근래 들어 정치·외교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 대통령을 두고 ‘좌파(左派)’가 아니라 ‘자파(自派)’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나온다. 그만큼 이 대통령이 ‘이념’에 얽매이기보다는 ‘실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마키아벨리는 흔히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군주론’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신뢰와 평판 역시 권력 유지와 실익 도모의 핵심 요소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1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역 유세 현장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께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지지층이 반발하자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말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정말 ‘화끈한’ 친미 행보를 보였고 이에 중국이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혹시라도 그가 훗날 중국을 향해 “친미라고 했더니 진짜 친미인 줄 알더라”라고 말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건 지나친 노파심일까. 정치인 이재명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능력과 자산 가운데 부족한 한 가지가 바로 ‘신뢰 자산’이다.
급변하는 신냉전의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 최고지도자의 비르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강대국 지도자를 상대할 때는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신뢰 없는 비르투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신뢰 없는 비르투는 언젠가 부메랑이 돼 돌아와 국가의 외교적 입지와 국익을 정면으로 위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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