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검찰의 ‘미인도’ 진품 판단에 반발해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천 화백의 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국가를 상대로 낸 1억 원 손해배상 청구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지난 4일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형사 사건을 제외한 소송에서 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이 없다고 보고 본격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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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는 1977년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본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했으나 10·26 사태 후 정부에 압수돼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이후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순회전 ‘움직이는 미술관’을 통해 작품을 공개하면서 진위 논란이 시작됐다. 천 화백은 당시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며 위작을 주장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전문가들은 진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논란 속에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천 화백 별세 이후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상대로 “진품이 아님에도 진품이라고 주장해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6년 8개월간 조사 끝에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X선, 원적외선, 영상 분석, DNA 감정 등 과학기법을 총동원해 “천 화백 특유의 제작 방식이 구현됐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에 유족은 “검찰이 감정위원을 회유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1억 원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제출된 증거만으로 수사기관의 성실 의무 위반이나 불법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올해 4월 2심도 “수사 과정에 다소 미흡한 점은 있으나 위법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유족 측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패소가 확정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검찰 수사 및 국가배상 청구 여부에 관한 것이며, ‘미인도’ 자체의 진품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 이 사건과 별도로 김 씨가 감정인 9명이 낸 감정서 정보를 공개하라고 서울중앙지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법원이 1,2심 모두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해당 판결은 검찰이 상고를 하지 않으면서 지난달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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