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핫한 세계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진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실패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톈안먼 망루 위에 나란히 서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는 모습이다. 이미 예견됐던 광경이기는 하다. 사진은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그들의 임무라 여기는 적대국의 결속을 상기시킨다.
놀라운 것은 중국 전승절 퍼레이드 며칠 전에 열렸던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 참석자들의 면면이다. SCO 모임에는 인도·튀르키예·베트남과 이집트를 비롯해 일반적으로 베이징보다 워싱턴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던 권역 내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트럼프의 관세와 적대적인 수사, 이념적 압박이 독성이 강한 혼합물로 작용하면서 세계의 많은 주요국이 미국을 등지고 중국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현대 외교정책 가운데 최악의 자살골이다.
떠오르는 미래의 거대 시장을 대표하는 국가 그룹인 브릭스(BRICS)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오리지널 멤버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들 외 다른 여러 국가들까지 회원국으로 거느리고 있다. 이번 모임에서 핵심 멤버인 브라질·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SCO를 반미 단체로 전환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노력에 저항했다. 수십 년 동안 워싱턴은 해당 지역의 지도국인 이들 3개국과의 관계 구축에 공을 들였다. 이들의 규모와 지위가 향상하자 미국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이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심한 독설과 공격적인 정책으로 이들을 대했다. 인도에는 세계 최고의 관세율을 적용했다. 브라질에도 초고율 관세와 함께 제재를 가했고 관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했다. 남아공 역시 30% 관세와 미국이 제공하는 해외지원금 전액 삭감, 정부 관리들에 대한 잠재적 제재에 직면한 상태다.
해당국 정부와 국민은 트럼프의 무례한 대우에 격분했다. 과거 인도는 압도적인 친미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워싱턴을 크게 불신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하향세를 보이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가 트럼프의 부당한 조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급속히 상승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의 무례한 공격에 시종 차분히 대응한 후 인기가 올라갔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 역시 민족주의 정서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정책 반전에는 전략적 합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독립적인 브라질 법원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승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이념적 동지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책임을 묻자 여기에 반발해 브라질 응징에 나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수십 년 동안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정책)가 초래한 토지 소유와 부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시행한 토지개혁법 때문에 트럼프의 노여움을 샀다. 이러한 이유는 미국의 제조업 기반 재구축이나 무역적자 감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실제로 미국은 브라질에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다.
미국이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구애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중국은 브라질과 함께 대서양 연안과 페루의 태평양 노선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시진핑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초청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도록 했다. 중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무역과 원조를 활용해가며 추파를 던졌다. 그 결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중 정서는 베이징에 상당히 호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트럼프가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거친 언사를 구사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나 그의 정책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고통과 비참함을 안겨주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그의 정책 아래서 다시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설사 재협상이 이뤄지고 이전보다 나은 조건으로 무역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상대국들의 쓰린 기억은 그대로 남게 된다. 워싱턴이 그들을 어떻게 다뤘는지 기억하는 국가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위험 부담을 줄이려 한다.
오늘날 미국의 외교정책은 한 인간의 무분별한 무시·모욕과 이념적 집착의 종합체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는 자신의 뜻대로 휘두를 수 있는 약소국들, 혹은 그에게 아부하는 이념적 동지를 좋아한다. 그는 자체적인 내부 동력, 자부심과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민주주의국가들과의 거래를 꺼린다. 이로 인해 트럼프 아래에서 미국은 기묘한 독재자 집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엘살바도르·헝가리·파키스탄과 걸프 군주국들이 대표적인 예다. 반면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캐나다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최근 이상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중국·러시아와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그의 정책이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과거 몇 달 동안 왜 대통령 자신이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듯 행동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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