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사법부가 처음으로 공식 회의석상에서 집단적 입장을 드러냈다. 대법원이 12일 소집한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법원장들은 “사법개혁은 국민을 위한 중대한 과제”라면서도, 졸속 추진을 경계하며 공론화와 사법부 참여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법부의 적극적 개입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전국 고등법원·지방법원 법원장 42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부터 약 7시간 동안 진행됐다. 회의에서는 △대법관 수 증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다양화 △법관평가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서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국회 논의 중인 5대 개혁안이 핵심 안건으로 다뤄졌고, 최근 발의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도 함께 언급됐다.
논의의 출발점은 대법관 증원 문제였다. 판사 대다수는 충분한 상고제도 개편이나 사실심 지원 없는 대폭 증원은 오히려 사법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법원장들은 “신속·충실한 재판을 위해 사실심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며 소규모 증원과 공론화 절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논의에서는 독립성 훼손 가능성이 집중 거론됐다. 현행 제청권 구조를 존중하되 운영 방식에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법관평가제도는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였다. 다수 판사들이 위헌 소지를 우려하며 부정적 의견을 냈지만, 법원장들은 “국민 신뢰 확보를 위해 일부 의견 반영은 불가피하다”며 사법행정 차원의 보완책 마련을 약속했다.
한편, 하급심 판결서 공개 확대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에 대해서는 원칙적 찬성이 우세했다. 판결서 공개 확대는 투명성 제고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개인정보 유출·상업적 악용 위험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붙었다.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역시 기본권 보장 차원에서 찬성이 많았으나, 수사의 신속성과 밀행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됐다.
비공식적으로 논의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이 두드러졌다. 특정 사건을 위한 재판부 설치는 재판 독립을 침해하고 위헌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회의는 사법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 속에서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공론화를 요구한 만큼 국회가 일방적으로 입법을 밀어붙이기는 어려워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학계와 변호사단체에서는 여전히 “검찰 권한 축소는 시대적 과제”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향후 입법 과정에서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