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유민주당의 조기 총재 선거를 실시하고 본인은 출마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새로운 총재가 다음 달 4일에 결정될 예정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유력한 차기 자민당 총재 후보로서 일본 국민들의 지지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어려운 대미 외교 등에서 수완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이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상에게도 가능성이 남아 있다.
각 후보들의 정치 성향을 보면 고이즈미가 다카이치에 비해 리버럴 개혁주의 성향이 강하고 다카이치는 보수적 우파 성향이 강하다. 하야시와 모테기의 경우 중도적 위치에 있고 고바야시 다카유시 전 경제안보상은 보수 성향이 강한 편이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고이즈미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이시바 총리가 추진했던 서민층을 중시한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 방향과 비슷할 것으로 보이는 한편 다카이치는 다시 아베노믹스의 재정 확대, 금융 완화 정책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자민당·공명당의 여당으로서는 새로운 연합·협력 상대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이즈미는 일본유신회와 가깝고 다카이치는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참정당과 가깝다. 모든 후보자가 소비 진작 정책을 강조하고 있으나 후보들이 협력 상대로 선호하는 정당의 재정 확대 요구도 고려하면 고이즈미가 될 경우 수조 엔의 추가 소비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의 경우 소비세의 단계적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참정당과 협력하면 보다 큰 규모로 재정지출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어느 후보가 돼도 재정지출 확대, 시장금리의 상승 기조가 예상된다. 물론 올 2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실질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2.2%(2차 수정치)를 기록하는 등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소비도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3분기 GDP는 전 분기 고성장의 여파로 성장률이 다소 둔화되고 금리 상승 영향도 있겠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의 완만한 회복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미 통상 협상이 타결되면서 자동차 관세가 15%로 낮아졌으나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는 새로 들어설 정부의 부담이 될 것이다. 이익의 90%가 미국 몫이고 도널드 트럼프 임기 중에 5500억 달러를 일본이 전부 투자해야 하며 미국 측이 투자선을 결정하고 트럼프의 재량도 작용할 수 있고, 일본은 45일 이내에 이를 승인하고 송금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 수조 엔, 수십조 엔의 막대한 사업에 대해 검토·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일 것이며 금융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보호주의가 강화되고 트럼프의 미국 제조업 부활 전략이 실패하고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한국과 일본 양국으로서는 협력해서 자유무역 경제권의 확대와 심화에 주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일본 신정부의 정치 성향에 따라 한일 간 정치·역사 문제의 마찰이 심화될 수도 있으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추진 등 협력 실적을 축적해 나가면서 정치·경제 분리의 양국 관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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