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방에도 서울의 광장시장과 같은 특화 음식 거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한다. 단순히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신메뉴 개발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관광 수요까지 이끌어낸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전국에 이미 300곳에 육박하는 특화 거리가 운영되고 있어 흡인력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내지 못할 경우 혈세만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이 지나치게 영세하고 생산성도 낮아 규모를 키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3.2%로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국 중 5위에 해당한다. 프랑스(12.9%), 독일(8.4%), 미국(6.1%) 등 서구권은 물론 이웃 나라 일본(9.5%)보다도 매우 높다. 이 중 연 매출 5000만 원 미만의 영세 자영업자 비율은 37.8%로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해인 2019년(28.1%) 대비 9.8%포인트 높아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자영업자의 영세성이 심화한 것이다.
2024년 기준 업종별 1인당 노동생산성을 봐도 자영업자들이 대다수인 숙박·음식업이 2740만 원으로 제조업(1억 5280만 원)을 크게 밑돌고 있다. 지난해 92만 5000명의 개인사업자 폐업에 법인사업자 폐업(8만 3000명)까지 더할 경우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까지 터지면서 올해 상반기 코로나19 때보다 더 어렵다는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늘어났다.
이에 정부도 1·2차 소비쿠폰 지급 등 긴급 조치에 나서는 동시에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방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폐업률이 높은 소매업(16%), 음식점업(15%) 등 업종별 취약 요인과 국내외 성공 사례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특화 상권 개발 및 앵커 기업 육성을 통한 규모화·특성화와 인공지능(AI) 기반 상권 분석 및 경영 진단 스마트화, 키오스크·스마트미러·서빙로봇 등 신기술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등을 꾀하고 있다. 요식업으로 성공 신화를 쓴 제2의 백종원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는 한계상황에 몰린 자영업자 시장을 체질 개선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269개의 특화 거리 사업을 운영 중인데 예산을 투입해 외형만 갖췄을 뿐 사실상 ‘유령 거리’로 전락한 곳이 상당수다.
기재부와 별도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부터 지역별 미식 자원과 관광 상품을 연계해 국내 미식 관광을 활성화하는 ‘K미식벨트 조성 사업’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 전남 담양과 전북 순창 일대의 장(醬)벨트를 시작으로 올해는 광주광역시의 ‘김치벨트’, 안동시의 ‘전통주벨트’, 금산군의 ‘인삼벨트’ 등 3곳을 운영한다. 여기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치킨벨트’를 구상 중이라고 밝히면서 13년째 치맥 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대구가 강력한 후보지로 떠올랐다. 그나마 K미식벨트는 겉치레를 중시하는 기존 지자체 특화 거리 조성 사업보다 콘텐츠에 집중해 진일보한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지방의 자영업자들은 수도권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라며 “지방에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해 소비를 일으킬 수 있는 정교한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영업자 부채가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동한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음식점업과 오프라인 유통업에서 2015년부터 창·폐업 모두 추세적 감소를 보이며 산업의 전반적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소상공인 부채 문제 등 민생경제 침체의 뇌관이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함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폐업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재기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금융 채무 조정에 이어 체납 기간이 1년 이상~5년 미만, 5000만 원 이하의 밀린 세금을 탕감해주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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