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의 비자를 취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직 국가 원수가 미국 방문 중 비자를 박탈당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 X(엑스·구 트위터)를 통해 “페트로 대통령이 뉴욕 시내 거리에서 미국 군인들에게 명령 불복종을 촉구하며 폭력을 선동했다”며 “무모하고 선동적인 행위에 따라 그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페트로 대통령은 이날 팔레스타인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그는 확성기를 들고 “미국 군인들에게 총을 겨누지 말라고 촉구한다. 트럼프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인류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페트로 대통령은 다음날 엑스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유엔의 창립원칙을 위반했다"며 "이제 더 민주적인 곳으로 가야 한다. (카타르) 도하를 유엔 본부로 제안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콜롬비아 대통령으로서 유엔총회에서 나는 자유롭게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국제법은 인류의 지혜이며 나를 보호해준다"며 "대량학살은 반(反)인륜 범죄로 인류는 이에 대응하고 판단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8월 출범한 페트로 정부는 콜롬비아 최초의 좌파 정권으로, 역내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대미 우호 기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외교 마찰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콜롬비아를 ‘마약 퇴치 협력 파트너’ 지위에서 해제했으며, 이에 따라 연간 5억달러(한화 약 7000억원) 규모의 대(對)콜롬비아 마약 퇴치 지원도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비자 취소 조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국무부는 법률 위반 등을 사유로 학생 비자 6000여 건을 일괄 취소했고 5월에는 학생·교환방문(F·J) 비자 신규 신청 일정을 중단하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다. 3월에는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이던 튀르키예 국적 유학생 루메이사 외즈튀르크가 비자 취소 뒤 체포돼 구금되면서 국제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수천 건의 비자를 이미 취소했으며 더 많은 사례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의 비자 취소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1996년 에르네스토 삼페르 당시 콜롬비아 대통령은 칼리 마약 카르텔 대선 자금 의혹으로 미국을 방문하기 전 비자가 취소됐으며, 2025년 팔레스타인의 마흐무드 압바스 대통령 역시 미국의 평화 노력 저해를 이유로 방미 직전에 비자가 취소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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