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계량법에 따르면 ‘정량표시상품’은 길이·질량·부피·면적과 개수로 표시된 상품 중 용기·포장을 개봉하지 않고는 양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게 한 상품입니다. 쌀부터 과자, 화장지까지 총 27종이 대통령령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량표시상품의 용기·포장에 정량을 표시할 때 상품에 표시된 양과 실제 내용량이 허용 오차를 벗어나선 안 된다는 점인데요.
그런데 최근 정량표시상품을 조사한 결과 실제 내용량이 상품에 표시된 양보다 적은 사례들이 다수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 10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부로부터 제출받은 ‘정량표시상품 내용량 조사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조사한 상품 1만3410개 가운데 3018개(22.5%)가 실제 내용량이 표시된 양보다 부족했습니다.
이 중 법적 기준은 충족(허용 오차 내)하지만 표시된 양에 못 미치는 ‘적합 과소실량’ 상품은 2827개(21.1%)였습니다. 품목별로는 △액화석유가스(47.4%) △꿀(37.5%) △도료(37.1%) △윤활유(30%) △곡류(28.9%) 등의 과소실량 비중이 높았습니다. △차·커피·초콜릿류 및 코코아(27.5%) △우유(26.7%) △음료류 및 주류(25.9%) △향신료(24.3%) △조미식품, 식용유지류 및 장류(23.0%)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정량표시상품에 허용 오차를 둔 배경은 표시정량과 실제 내용량을 정확하게 맞춰 생산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일부 업체들은 허용 오차 내에서 내용물을 법적 기준의 최저한도까지 줄여 생산하는 꼼수로 생산비를 줄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실정인데요.
이에 김 의원이 묘책을 담은 계량법 개정안을 올 11월 대표 발의했습니다. 바로 정량표시상품에 정량을 표시할 때 실제 내용량은 상품에 표시된 양보다 ‘크거나 같도록’ 한 것입니다. 현행법은 ‘상품에 표시된 양과 실제 내용량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허용오차를 초과하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돼 있는데요. 쉽게 말해 개정안은 더 담는 건 마음대로지만 조금이라도 덜 담는 건 불법이라는 겁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해당 사실을 공표할 수 있도록 했고 산업통상부 장관이 정량표시상품 전담기관을 지정하게 했습니다. 이미 유럽연합(EU)과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은 포장된 양은 평균적으로 표시량과 같거나 커야 한다는 ‘평균량 요건’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27종인 정량표시상품 대상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려동물용품과 건강기능식품 등 최근 소비가 급증하는 제품들도 체계적인 정량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야 극한 정쟁 속에서도 소비자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실태 조사와 정책 토론회를 거쳐 법안까지 마련한 김 의원을 두고 “국회의원 입법활동의 모범”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표시된 양보다 실제 내용량이 적어 억울할 일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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