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던 경찰관과 견인차 기사를 치어 숨지게 한 30대 SUV 운전자가 크루즈(주행 보조) 기능을 켠 채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전자 보조 기능을 ‘자동운전’처럼 과신하며 딴짓을 하는 일부 운전자들의 위험한 인식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8일 전북 고창경찰서에 따르면 차량 사고기록장치(EDR) 분석과 운전자 진술을 종합한 결과, A씨는 사고 당시 차량의 크루즈 기능을 활성화한 상태로 주행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졸음운전”이라면서도 “크루즈 기능이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명확히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4일 오전 1시 23분께 서해안고속도로 상행선 고창분기점 인근에서 졸음운전을 하다 앞서 발생한 사고 수습 현장을 그대로 덮쳤다. 이 사고로 전북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소속 이승철(55) 경정과 38세 견인차 기사가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정부는 순직한 이 경정에게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고, 경찰청은 1계급 특진을 결정했다.
크루즈 기능을 과신한 운전이 사고로 이어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전기차 한 대가 사고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소방차를 감속 없이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주행보조 기능이 켜진 상태였고, 사고 직후 현장을 수습하던 구급대원들이 급히 몸을 피하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이 사고로 20대 운전자는 중상을, 30대 구급대원은 타박상을 입었다.
이 같은 사고가 잇따르면서 일반 운전자들 사이에서도 크루즈 모드를 둘러싼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운전자 A씨는 “고속도로에서 비틀거리며 가는 차를 보고 음주운전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 보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며 “크루즈를 켜놓고 딴짓을 하는 것 같아 섬뜩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크루즈 컨트롤이나 고급 주행보조시스템(ADAS)이 차선이 희미한 구간, 공사 구간, 사고 현장에서는 오작동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차선을 잘못 인식해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차로를 찾기 위해 급격히 조향하다 중앙선을 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크루즈 기능을 ‘자동운전’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자체가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크루즈 기능을 켰다고 해서 졸음운전이나 전방 주시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며, 특히 야간 고속도로와 사고 수습 현장처럼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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